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사설 독자마당

함께 읽는 詩 한편- 소 그리기

성주신문 기자 입력 2019.11.12 10:08 수정 2019.11.12 10:08

↑↑ 박 덕 희
작가
ⓒ 성주신문


소를 그리려면
일단
뿔을 그려야 된다
그리고
귀를 그린 다음에
코뚜레를 그리고
몸통을 그리면

근데 다리를 그리는 게
어렵다
다 그려놔도
못 걸어다닐 것 같다

『무지개가 뀐 방이봉방방』, 문학동네(2019)




어, 뭐지? 인쇄가 잘못된 줄. 초등학교 저학년 그림일기를 보는 것 같다. 김창완답다. "소를 그리려면/ 일단/ 뿔을 그려야 된다/ 그리고/ 귀를 그린 다음에/ 코뚜레를 그리고/ 몸통을 그리면/ 끝". 간단 명쾌하다. "근데 다리를 그리는 게/ 어렵다/ 다 그려놔도/ 못 걸어 다닐 것 같다"는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말에 픽, 웃음이 난다. 다시 "근데"라는 부분에 눈길이 간다. 그런데(의 준말 근데)는 앞의 말을 관련시키면서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거나 상반된 내용으로 이끌 때 쓰이는 접속 부사이다. 몸통까지 그리는 것은 쉽다. "근데 다리를 그리는 게/ 어렵다" 왜냐하면 "다 그려놔도/ 못 걸어 다닐 것 같"기 때문이다. 방점은 여기에 있다. 다리는 어려워 못 그려서, 다리를 어렵게 그리더라도 그림이라서 "다 그려놔도 못 걸아 다닐 것 같은" 불안이 있다. 그런데 왜 난 그가 그린 소가 뚜벅뚜벅 잘 걸어 나갈 것 같은 느낌이 들까. 단문의 단호함과 천진한 동심 때문일 것이다. 그의 동시는 천진하고 단순하고 무심한 듯 맑기만 하다. 웃음 뒤에 무심한 듯 욕심 없는 말로 보편성을 말하고 있어서 울림이 깊다. 그이 속에 어린이가 살아 숨 쉬는 만큼 자유가 살아 숨 쉬는 것 같다.


저작권자 성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