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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독자마당

조선왕릉 답사(4)

성주신문 기자 입력 2022.07.12 09:34 수정 2022.07.12 09:34

↑↑ 여 환 주
전 재경성주중고 동문회장
ⓒ 성주신문


지난 6월 18일에 (사)한국전통조경학회(회장 최종희 교수)주관 4차 조선왕릉 답사를 다녀왔다.

이번 답사 지역은 모두 서울특별시내에 있는 왕릉으로써 먼저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있는 태릉·강릉을 찾았다.

태릉은 중종의 두번째 계비인 문정왕후의 능이다. 문정왕후는 중종과의 사이에 1남4녀를 두었으며 장경왕후 소생인 인종이 재위 8개월만에 승하하자, 아들인 12세의 경원대군을 명종으로 즉위 시켜 8년 동안 수렴청정을 행하며 막강한 권력을 누렸다. 특히 동생 윤원형을 내세워 인종의 외숙인 윤임을 비롯한 사림세력을 제거하는 을사사화를 일으키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린 것으로 유명하다.

원래 문정왕후는 남편 중종릉을 서삼릉 영역에서 천장하여 성종릉인 선릉 옆 산줄기에 안장하고 자신도 그 옆에 묻히고자 하였으나 홍수가 나면 침수 피해를 입는 일이 잦아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난 후 그곳에 능을 쓸 수 없어 현재의 자리에 능을 조성하고 태릉이라 하였다.

태릉 봉분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둘렀다. 병풍석에 십이지신상을 방위에 맞게 조각했던 이전의 능과 달리 태릉의 병풍석에는 십이지(十二支)를 글자로 새겼다. 문석인과 무석인 등의 석물은 다른 능에 비해 크기가 장대한 조선 중기의 특징을 보여, 보는 순간 능의 이름도 '클태'자 태릉 답게 여성이 아닌 강한 남성의 능으로 착각할 수 있었다. 이는 살아서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는데 죽어서도 이런 능을 갖추었으니 타고난 여걸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같은 경내에 있는 강릉(康陵)을 둘러보았다. 강릉은 제13대 명종과 그의 비 인순왕후 심씨를 모신 능으로 명종의 어머니 문정왕후의 태릉으로부터 1km 떨어진 동쪽 산줄기에 안장되어 있다.

명종은 1545년 이복 형인 12대 인종이 일찍 세상을 떠나 12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으나 즉위 초 8년간 어머니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을 받았고 이후 직접 정사를 보며 외척 세력을 견제하고자 노력하였으나 34세의 나이로 경복궁 양심합에서 세상을 떠났다.

강릉은 하나의 곡장 안에 두 기의 봉분이 조성되는 쌍릉으로써 강릉을 찾아가는 길은 호젓하여 어떤 의미에서는 어머니 문정왕후의 치마폭에 가려 왕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명종시대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그래서 지금도 어머니인 문정왕후가 보살펴 편안해 보이는 능이기도 하다.

점심 후 오후에는 성북구 석관동에 있는 의릉(懿陵)으로 향하였다. 의릉은 제20대 경종과 계비 선의왕후의 능으로써 경종은 숙종의 맏아들로서 그 유명한 장희빈이 그의 어머니이다. 3살 어린 나이에 왕세자의 자리에 올랐지만 14살때 어머니 장희빈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경종은 후사 없이 4년2개월의 짧은 재위 기간으로 승하했다.

의릉은 천장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산줄기에 위쪽에는 경종릉이, 아래에는 선의왕후릉이 모셔져 동원상하릉(同原上下陵)의 형식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는 자연형태에 순응하여 만든 것으로써 좌우로 왕과 왕비릉을 만들 경우 산천의 좋은 기운이 흐르는 맥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위 아래로 능이 자리잡게 했다고 한다.

다음은 오늘의 마지막 답사로 성북구 정릉동에 있는 조선의 제1대 태조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능인 정릉(貞陵)을 찾았다. 고려의 풍습에 따르면 향처와 경처가 있어 태조의 첫번째 부인인 한씨는 향처였고(고향 함흥동북면) 경처로는(수도인 개성)신덕왕후 강씨를 맞아 들였던 것이다. 신덕왕후는 판삼사사 벼슬을 지낸 강윤성의 딸로서 그녀의 집안은 고려 중앙 정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안이었다.

태조의 첫번째 부인이었던 신의왕후 한씨가 1391년에 돌아가자 신덕왕후는 조선 개국과 함께 왕비의 지위에 올라 개국공신 세력인 정도전, 남은 등과 함께 자신의 둘째 아들인 방석을 세자로 세우는 등 정치력을 발휘하였으나 1396년 신덕왕후가 승하함에 따라 상황은 반전되기 시작한다.

태조는 사랑하던 신덕왕후의 죽음을 슬퍼하여 왕비릉을 도성내에 조성하고 장차 자신이 묻힐 수릉지로서 신덕왕후의 우측을 정해놓고 정릉이란 능호를 내렸다. 하지만 잘 조성된 신덕왕후 정릉은 태종 즉위 후 태조가 승하하자 아예 정릉을 도성 북동쪽 양주 사을한 산기슭으로 현재의 성북구 정릉동으로 천장한다.

오늘 답사한 3지역은 모두 걸출한 행적이나 거침없는 권력행사로 기억되는 왕비들과 관련되는 능을 둘러보면서 일시적인 권력 행사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옛 왕조시대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사실임을 깨닫게 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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