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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전국구는 이제 그만 - 하승수

성주신문 기자 입력 2023.03.07 09:31 수정 2023.03.07 09:37

↑↑ 하 승 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변호사
ⓒ 성주신문

 

대한민국에서는 '비례대표'에 대한 오해가 많다. 그 원인은, 지금 '비례대표'라고 불리는 일부 국회의석이 사실은 군사쿠데타 직후에 도입된 '전국구'의 후신이기 때문이다. '전국구'는 제대로 된 비례대표제 선거제도를 만들려고 도입된 것이 아니다. 1963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박정희 정권측이 국회의원 시켜주고 싶은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쉽게 만들어주는 수단으로 도입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전국구'라는 제도는 <표의 등가성>을 보장하기 위한 '비례대표제'라는 선거제도와는 무관하게 도입된 것이다. 그런데 2000년에 공직선거법이 개정되면서 '전국구'의 명칭을 '비례대표'로 바꾸면서 오해가 생긴 것이다. 오해 중에 대표적인 세 가지를 꼽으면, 아래와 같다.

첫째, 비례대표 순번은 정당이 정해야 한다는 오해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비례대표제를 실시하고 있는 많은 국가들은 유권자들이 정당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후보까지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정당별로 배분되는 의석수는 정당득표율에 따라 정하고, 그 정당 안에서 누가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될지도 유권자들이 정하는 것이다. 이것을 개방형 명부(open list)라고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비례대표 의석조차도 정당이 순번을 정하게 된 이유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5.16군사쿠데타 직후에 박정희 정권 측이 자신들이 미는 사람들을 안전하게 당선시킬 목적으로 '전국구'라는 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당이 상위순번을 준 사람이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렇게 국회의원이 된 대표적인 사람이 나중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호실장을 했던 '차지철'이었다. 그는 육군소령으로 예편해 1963년 총선에서 불과 30세의 나이로 전국구 국회의원이 되었다.

두 번째 오해는, 비례대표 명부는 '전국 단위'로 작성하는 것이고, 비례대표는 지역대표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례대표제 선거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많은 국가들은 비례대표 명부를 권역별로 작성하고 있다. 권역별로 정당들이 비례대표 후보를 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전국구'가 아니라 '경북권역 비례대표', '전남권역 비례대표'가 선출되게 된다. 비례대표도 자기가 선출된 권역을 대표하는 지역대표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세 번째 오해는, 비례대표는 전문성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는 과거의 '전국구' 방식을 옹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논리라고 할 수 있다. 거대정당 지도부가 비민주적으로 공천한 사람들을 비례대표로 만들려고 하다 보니, 이런 논리를 만든 것이다.

그러나 비례대표제라는 선거제도는 <표의 등가성>을 보장하기 위해 발명된 제도이다. 즉 승자독식을 방지하고, 정당이 얻은 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인 것이다. 이것이 비례대표제라는 선거제도의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취지이다.

그리고 이런 취지가 제대로 실현되면 다양한 정치세력이 국회에 들어갈 수 있게 되고, 그 결과로 다양한 목소리가 대변될 수 있다. 다양한 전문가들도 국회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비례대표의 '전문성'은 비례대표제가 얻을 수 있는 결과물 중에 하나일 수는 있어도, '전문성' 때문에 비례대표가 필요하다는 것은 근거가 희박한 얘기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지금 국회 안팎에서 이뤄지는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가닥을 못 잡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비례대표제라는 선거제도에 대한 무지와 오해가 개혁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완벽한 선거제도는 없더라도, 더 나은 선거제도는 있다. 그리고 더 나은 선거제도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덕목은, 유권자들의 표심이 그대로 반영되는 <표의 등가성>이다.

그리고 지역내에서도 표의 등가성이 반영되면, 특정 지역을 특정 정당이 지배하는 '일당지배'는 성립될 수 없다. 대구ㆍ경북에도 민주당을 지지하는 표가 상당하고, 호남에서도 국민의 힘을 지지하는 표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수정당을 지지하는 표도 전국적으로 상당히 있다. 이런 표들이 사표가 되지 않게 하는 것이 선거제도 개혁이 추구해야 할 제1의 목표이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개혁'이 될 수 없다. 어떤 형태로든 <표의 등가성>이 훼손된다면 그것은 '개혁'이 아니라 '개악'일 뿐이다.

올해 4월 10일이 선거법을 처리해야 할 법정시한이므로, 시간이 별로 없는 상황이다. 대선 때부터 선거제도 개혁을 약속한 민주당은 당론을 내놓아야 한다. 국민의 힘도 물론이다. 김진표 의장이 약속한 국회 전원위원회도 3월에는 열려야 한다. 그 모든 논의에서 가장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은 <표의 등가성>이다.

 

* 외부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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