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 필 동 수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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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6호에서 이어집니다.) 작년 5월 본지에 '노래가 역사'라는 제호로 '4·19노래'를 시작으로 노래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해방 전후에 있었던 노래를 우리들이 고무줄놀이 하던 때에 불렀던 노래가 태반이다. 오늘날과 같은 정보통신의 시대가 아닌데 노랜들 음정 박자는 고사하고 가사도 구전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때였다. 해방가로 알려진 '독립행진곡'을 적고 싶었지만 첫 소절 '어둡고 괴롭구나'와 끝 소절 '···아아 자유의 종이 울린다.'만 적고 말았다.
그랬는데 이 신문을 본 우리군 출신 2선 김창환 국회의원이 2절까지 꼼꼼히 적어 보냈다. 소년 적의 기억을 강산이 일곱 번이나 바뀐 오늘에 와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되살렸음에 깜짝 놀랐다. 내가 적은 끝 소절 '아아 자유의 종이 울린다'도 그렇지만 '5천년 조국의 역사···, 앞으로 억만년이 더욱···, 우리의 앞길이 양양···, 아아 청춘의 피가 끓는다'가 새삼 가슴을 울리었다. 한정된 지면에 모두 적을 수 없음이 유감이다.
2선 의원에다 헌정회 운영위원장 중책도 수행하는 중진 원로가 어릴 적 노랫말까지 외고 있음에 놀랐다. 다만, 국정과 노래가사와 무슨 연계가 있을까도 싶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만큼 국민의 삶과 노래를 동류항(同類項)에 놓고 보는 것, 그게 바로 국정의 한 영역이 아닌가도 한다. 다시 말하면 노래가 국민 정서요, 국민 정서가 곧 국가의 근간이 되지 않을까라는 말이다.
설 얘기하던 어느 날 주간지 '칠곡신문'을 취득했는데, 거기 김창환 의원의 개략적이지만 디테일한 의정활동이 실려 있었다. 당시에도 알았지만, 초선 8대 때 유신통치 바람에 임기 채우지 못 하고 9대에 재선됐다는 사실을 다시 보니 그 감회가 새로웠다. 역시 김 의원도 의정의 길이 순항만 있었던 것만은 아닌 '투사'의 험로였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대학생일 때 자유당 폭정에 맞서 '공명선거대학생추진위원회' 회원으로서 독재정권 타도, 썩은 정치 철퇴(鐵槌)를 가하자는 함성을 쏟아 포효했다고도 했다.
내 초교 입학했을 때 김창환 의원은 5학년이었으니 4년차 선배였다. 2년 동안 그의 활달한 품성이 아직도 내 맘에 고스란히 남았으며, 특히 운동회 때는 '뛰면 1등'이라 1등 깃발은 선배의 전유(專有)였다. 1학년이 5학년 상급생을 볼 때마다 그 눈의 '열의 끼(열기)'가 오늘날까지 내 뇌리에 영상화(映像化), 각인이 돼있다. 그땐 그 열끼를 조금은 머쓱한 표현인 '부리부리'로 볼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다(?)'다. 더구나 의성김문과 우리 영천최문은 인적 교류는 물론 혼척으로도 인과관계가 뚜렷하니 김 의원의 정치 행로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게 지금도 잔존하고 있다.
그 한참 후 어느 날 대구 번화가 동성로에서 몇 고향 친구와 만나 다방에 갔을 때였다. 사실 그땐 영·호남의 지방색을 두고 논란이 우심(尤甚)할 때였는데, 왜 하필 김대중 의원 계열에 들었을까가 관심이었다. 그때 호남을 대표하는 그와 동도(同途)를 택했다는 것은 영남에서는 외람되지만 모험이요 '형극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걸 물어볼 새도 없이 앉자말자 당시 무소불위의 박정희 정부의 비정(秕政)을 질타하기 시작했던 것이 지금도 남아 있어 더욱 새롭다. 그러더니 신민당 공천 받아 지명도와 조직 탄탄한 송한철을 이겼으니 30대 초반의, 혜성처럼 나타난 샛별이었다. 때 묻지 않은 열정과 참신함의 결정판이었다. 온 언론이 '센세이셔널···!'이라 했다.
성주의 자랑이요 자존감이라 선거 때 그냥 있을 수 없는 발길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왜관 유세장에 갔다. '(···) 공화당 정권의 부정부패를 척결(剔抉)합시다!'라는 일갈을 들으니 섬뜩하기도 했다. 그땐 엄혹한 '남산의 정치(중정)'에 야당이 직격탄을 날리기가 쉽지 않을 때이니 재론의 여지가 없다.
초선의 의정활동 중 나라사랑 열정과 소명이 어땠는지의 증표는, 국감장에서 나타났다. 정연한 논리로 얼마나 질책했던지 피감자는 '혼을 다 빼앗겼다' 했으며, 다음 날 일간지는 '속사포 김창환 의원'이라 특필했다.
앞서 언급한 칠곡신문 기사 계속-. 국회 마당에서 '국회의원 서도회·헌정회'가 주관한 신년(2023) 휘호 퍼포먼스를 개최했었는데, 거기 김 의원이 쓴 휘호가 실렸다. 주제는 '붕새가 회오리바람을 타고 9만 리를 나른다'는 붕정만리(鵬程萬里)의 사언구였다. 흔히들 아는 흘림체(?)인데 예서인지 전서인지 나는 모르지만 휘갈긴 필세가 눈을 어리둥절케 했다.
감히 말하자면 '아마추어 수준'은 넘은 게 아닌가 하는 내 단견이다. 앞서 얘기한 노랫말에다 서예에까지 재예(才藝)를 보였으니···. 또 정치란 '붕정만리'이듯 먼 미래를 내다봐야 하고, 지금 정치의 당리당략과 여야 불문 이전투구의 비판, 정치인으로서의 불의와 타협 없이 지조를 지키며 굳건히 살아왔다고도 신문은 썼다. 그게 가장 인상적이었다.
'팩트'는 김대중이 통일민주당을 깨고 평민당을 창당할 때도 통일민주당을 지켰고, 김영삼이 여당과 3당 합당할 때도 단호히 통일민주당을 지켰다고 했으니 이에 대한 올곧은 신념은 정치사가 평가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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