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 종 출 펫헤븐AEO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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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볼 수 있고 생각하는 대로 보이고 느끼는 대로 들릴 수도 있을까? 병리학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 '생각대로'의 경향이 분명히 있는 것을 경험했다. 긍정의 힘을 믿어도 된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삼일 동안에 연달아 없어진 떡국거리 때문에 자물통을 세 개나 추가로 설치하고 집에 감시용 카메라도 달았다. 하찮은 물건이 없어진 데 대한 두려움으로 아내는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부부간에 생각의 차이로 말다툼도 이어졌다. 아내가 지나치다 싶을 만큼 소심한 성격에다 결백 증상까지 있는 터라 가끔 아주 사소한 문제가 다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는 다르다. 나도 내 눈으로 정황을 보았기 때문이다. 모든 일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며 논리적이어야 한다는 내 생각에는 일관성이 있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절도 사건은 달리 설명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도대체 어떻게 없어졌을까? 서생원(鼠生員)의 짓이라면 물그릇에 담긴 것을 어떻게 끄집어냈을까? 하필 그 시간에 누군가가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듯한 소리를 들었을까? 사람이라 먹을 것이 필요했다면 왜 다른 더 맛있는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았을까? 요즘같이 물자가 풍부해서 버려지는 음식에 골치 아픈 세상인데 떡가래를 무슨 금가루로 만든 것도 아닌데 왜 하필 떡국거리냐고? 아니면 정초에 주술 푸닥거리에라도 쓸 요량이었을까?
아내의 얼토당토않은 추측과 추리로 '도둑'이 틀림없다고 주장하는 억지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고 우기면서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내가 오히려 답답하게 되었다. 아마도 생쥐가 그랬을 거라는 나의 주장에 대해 지나가는 소에게 물어도 웃을 일이라고 타박을 주는 아내에게 어떻게 강펀치를 날릴 수 있을까?
옛말에 "의 물용 하고 용 물의" 하라는 잠언이 있다. 의심이 가면 쓰지 말고 용(채용하다, 쓰다, 부리다) 했으면 의심하지 말라는 뜻이다. 남을 의심 한다는 것은 먼저 자신을 믿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자기 자신에게 확신이 있으면 의심을 하지 않게 된다. 범죄나 정황 사실에 있어서의 의심은 차치한다. 본인이 남을 의심한다는 것은 일종의 마음에 부과되는 죄악일 수 있다. 자신에게 확고한 믿음이 있다면 상대를 의심하는일은 줄어든다.
남을 의심한다는 것이 얼마나 상대에게 심리적으로 피해를 주는 것인지를 과학적으로 증명하기로 했다. 생쥐에 대해 알아보았다. 척삭동물이며 포유류다. 연 4회에서 6회 정도 계절에 상관없이 임신이 가능하고 임신기간은 3주간 정도이다. 특징으로 "먹이를 저장하기도 한다." 이 대목에 주목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주방 어디엔가 흔적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 서생원을 잡아야 하는 게 급선무다. 약국에서 강력접착 시트를 구입했다. 그날 이후로 어떤 음식에도 흔적이 없었으므로 서생원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유인을 위한 맛나는 먹을거리도 준비해서 서랍 어두운 구석에 설치해두었다.
과학에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날 이후 일주일 정도를 조용하게 보냈다. 차츰 생각에서 사라질 때쯤에 일이 벌어졌다. 증거물이 발견된 것이다. 가까이에 사는 딸아이의 집에 외손자를 보러 자주 드나드는 게 일상이 된 아내가 며칠은 시골에 출근을 하지 않았다. 아내가 없는 동안 성과를 내야 한다는 집요함이 발동했다. 시골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짐작이 가는 곳이 있었지만 아내가 있을 때는 타박을 받을까봐 행동하지 않았다. 기회가 왔을 때 주저하지 말고 행동하라. 소신대로 해보자. 이리저리 뒤졌지만 눈에 들어오는 흔적이 없었다. 순간 싱크대 위 설거지 접시를 재어두는 상자 모서리에 희끗한 흔적이 시야에 들어왔다. 옳거니! 그러면 그렇지! 한 됫박이나 되는 양이 어디에 있을까? 하고 추측했었던 것이 가득 쌓여있었다. 불과 1m 남짓 거리에 서생원은 날이면 날마다 야밤에 먹거리를 물어다 쌓았던 것이다. 한입에 하나씩이라면 백 번은 넘게 왔다 갔다 하면서 먹을 것을 채워두었다. 현장이 확보되었고 증명이 명확하게 되었다. 그제야 아내는 "세상에나 이런 일도 있구나." 서생원의 짓이라고 우겨댄 남편의 말을 인정해 주었다.
도난 물품은 회수되었다. 범죄행위를 한 서생원도 강력접착제에 발이 붙어 버린 채로 체포되었다. 싱크대 서랍 맨 밑 칸에 인간이 설치한 살상 무기에 발이 붙어버린 것이다. 서랍을 열었을 때 서생원의 눈과 서로 마주친 순간, 아뿔싸! 하지 않았어야 할 일을 한 것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미안한 마음이 엄습해왔다. 도둑은 잡지 말고 쫓으라 했는데….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놓고도 극명하게 의견이 대치되었다. 아내는 나쁜 짓을 한 놈이기 때문에 더 때려주어야 한다고 했고 나는 그놈도 먹고살려고 한 짓인데 스스로 힘이 빠져 명을 다할 때까지 기다려주어야 한다고 했다. 이 모든 일이 욕심이 과해서 생긴 일이다. 만약에 서생원이 자기가 취할 만큼만 취하고 주인도 모르게 조금씩 그날그날 필요한 만큼만 취했다면 이런 혹독한 대가를 치르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과욕은 금물이다. 생각에 생각을 또 보태어 본다. 믿는 만큼 보이고 믿는 만큼 느낄 수 있다는 설(說)은 설이 아니고 확증할 만한 근거로 믿게 되었다. 긍정의 힘, 행복한 느낌,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마음은 늘 살아있음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