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성 락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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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생존 목적은 행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행복 지수는 물질적인 풍요로움도 아니고, 기반 시설의 편리함도 아니고, 높은 교육 수준도 물론 아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먹고 살만 하지만 행복지수는 OECD 국가 중에서 제일 하위라고 한다. 뿐만 아니고 국민 개인 간의 신뢰성, 언론의 공정성도 그렇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국민의 개성 문제가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극단적인 이기주의, 냉혹한 기회주의, 철저한 개인주의 국민성이 선진국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것 같다.
나 혼자만의 이익을 추구하고 근시안적인 안목으로 좁은 함정에서 허덕이면 거기에서 어떻게 탈출하겠는가? 기회주의 또한 마찬가지다, 기회가 주어지기만을 기다리거나 기회를 찾아다니는 얇은 태도로는 눈에 뛰는 결과를 창출하지 못할 것이다.
거대함과 웅장함의 역사는 필연적으로 많은 사람의 협동과 지혜의 융합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듣고 보았다.
개인주의는 국가 발전을 위해 당연히 지워버려야 할 암적인 존재이다.
국민이 느끼는 행복감과 평화는 국민 저변에 기본적으로 두텁게 깔려있는 도덕성과 준법정신의 기초 없이는 실질적으로 불가능 할 것이다.
이 기초를 다지기 위해서는 국민 의식과 의념의 개조나 변화가 필연적으로 있어야 한다.
의식의 변화란 뭐일까? 나보다는 너를 먼저 생각하는 변화이다.
엄청난 변화이고 역설적인 말 같기도 하다. 그러나 너에 대한 그 참 의미를 생각해보자. 나라는 존재는 어떻게 생성했고, 어떻게 생존하고 있는가? 부모라는 너가 있기 때문에 비로소 내가 있는 것 아닌가? 농사짓는 너, 음식 만드는 너가 있기 때문에 내가 생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간단한 몇 개 예를 보더라도 너 없이는 나는 존재하지 못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 같이 나보다도 더 중요한 너의 존재를 배려하고 인정할 때 거기에서 참 행복과 평화가 꽃피는 것 아니겠는가?
너에게 일보 양보해 보라, 그러면 너로부터 이보의 배려를 받을 것이 확실할 것이다.하등 동물일수록 나만 생각하고 너를 생각하지 않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민도가 낮은 국민은 나만 알고 너는 상관하지 않는다.
일등 선진국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나보다는 너를 배려하는 마음을 금방 인식할 수 있다. 이것은 협동하는 사회, 화합하는 국가를 이루어 행복과 평화를 이루어 낸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추악한 사회 풍조는 나만 아는 이기주의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자신의 이기주의 달성을 위해 너를 비방하고 모독하며 음해하는 자태로서는 선진국에 도달하기는 어림없다.
어느 사회이건 나보다는 우수하고 창의적인 너가 있기 마련이다. 이 우수한 너를 인정하고 협력하여 원심력을 키워 나갈 때 그 힘에 의하여 행복과 평화가 자리 잡히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치유해야 할 병폐는 극도의 이기주의, 극도의 기회주의, 극도의 개인주의이다.
이 세개의 병을 치료하기 전에는 진정한 문화민족이 되기는 요원하다.
최근에 나타나고 있는 현상을 한번 보자. 이기주의에 사로잡혀서 도덕과 양심과 법치를 헌 신짝처럼 버리고 실성한 사람 모양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게다가 이들이 배운 사람이고, 고위층이고, 알만한 사람들이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남이 나보다 행복하고 평안할 것이라는 허상을 가지고 탐심을 가지거나 원망의 마음을 가지지 말고 참 나를 찾아 내 처지와 내 분수를 알고 그 안에서 진정한 행복과 평안을 영위해 간다면 보기 싫은 이기주의는 사라질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평화롭고 행복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