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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 미 영 녹색전환연구소 지역전환팀 |
| ⓒ 성주신문 |
"다음 달까지 빼달라고요?" 거주하는 집을 나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서울에서 살만한 집을 구하는 일은 갈수록 너무 어렵다. 폭염을 견딜 에어컨이 있는지, 버스정류장에서 얼마나 먼지, 너무 좁지 않은지, 너무 오래된 건물은 아닌지 같은 것을 따지다 보면 자산가가 아닌 청년에게 선택지는 매우 적다. 부동산에 문의도 해봤다. 부동산 사장님은 몇 군데 집을 보여주시다 근처에 있는 빌라 한 곳을 권하셨다. 얼마 전 재개발이 확정된 곳이니 대출을 해서라도 사면 5억은 깔고 가는 집이라고. 빌라를 보러 가는 골목길에는 재개발을 환영하는 건설사 플래카드와 강경한 어조로 결사반대하는 주민 플래카드가 나란히 걸렸다. 10년 뒤 이 곳은 어떤 공동체로 남을까.
빌라는 허름했다. 햇볕이 들지 않는 창, 답답한 구조, 하수구 냄새, 그런데 대출 이자는 월급의 1/3을 넘는다. 여기서 편히 쉴 수 있을까? 난방, 냉방은 잘 될까? 10년간 이 곳에서 사는 내 삶은 어떤 모습일까. 아무래도 어렵겠다고 말씀드렸지만, 그런 내가 답답하셨는지 사장님은 직접 계산기를 두드리며 당분간 이만큼 이자가 들어도 장기적으로 보면 남는 장사라는 것을 강조하셨다. 그렇다. 서울의 재개발 공식은 '당장 돈이 없어도 대출해 이자를 내면서 버티면 보상받을 수 있는 곳'을 사는 것이다. '지금 충분히 살만한 곳인가'를 따지는 사람은 세상물정 모르는 이다.
주거비는 높은 서울 생활비의 주요한 이유다. 2024년 '서울복지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의 가구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은 11.4배에 달한다. 가구소득만으로 주택을 마련하기는 어림없다. 그러니 대출을 해서라도 오를 곳은 사야 한다는 공식이 통용된다. 이 선택에 베팅한 모든 이들의 믿음을 양분 삼아 공식은 더욱 공고해진다. 지나친 이자 부담에 임차인의 길을 걷는다면 어떨까. 더 험난한 가시밭길이 기다린다. 서울 임차가구의 주거비 부담을 나타내는 1년 소득 대비 주거임대료의 배수(RIR)는 37.7%에 달한다. 소득의 약 40%를 주거비로 지출한다는 의미다. 서울만의 일도 아니다. PIR은 전국 평균도 6.3배, 수도권이 8.7배, RIR도 전국 평균이 15.8%, 수도권 18.4%에 이른다.
주거비 부담과 장벽은 사회불평등과 연결된다. 2025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 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의 ¹지니계수가 0.625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그 원인은 부동산 등 실물자산의 증가로 지목된다. 주거 불평등은 사람들의 거주지도 분리시키고 있다. 국토연구원의 ²공간지니계수 연구에 따르면 서울, 부산, 대구, 인천, 대전 등 대도시의 지니계수는 0.3을 넘는다. 그 중 서울이 가장 심하며 고가주거지와 저가주거지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수준이다.
(¹지니계수는 0부터 1까지이며 0이면 완전 평등, 1이면 완전 불평등을 의미한다.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하다. ²주택가격에 따라 주거지가 분리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지니계수처럼 0에서부터 1까지로, 수치가 높을수록 공간적 맥락의 불균등이 크다.)
낮은 소득과 자산의 출발점에서 시작한 사람은 점점 더 충분히 살만한 집에 다다를 수 없다. 열악한 주거지는 건강과 안전의 악화를 가져온다. 저가 거주지역은 문화, 공동체, 교육 등 사회적 복지가 충족되지 않은 곳일 가능성이 높다. 2025년 기준 한국의 30년 이상 노후 공공임대주택은 전체 공공임대주택의 14.3%에 달하는데 입주자 중 고령층, 저소득층 비율이 높다. 노후된 시설은 화재 등 사고 위험이 높은데다 단열 등 추위와 더위에도 약해 입주자의 건강, 안전을 악화시킬 뿐 아니라 에너지 비용 부담까지 가중시킨다. 극심해지는 폭염, 한파 같은 기후위기에 집이 도리어 위기 공간이 되는 일도 벌어진다. 장애인, 노령층 등 취약한 이동성을 가진 입주민들에게 폭우, 산불 등 기후재난은 더욱 위험한 재난상황이 되기도 한다. 기후위기 시대 '안전하고 거주하기 충분히 괜찮은 집'이 모두의 보편적인 공공재로 제공되어야 하는 이유다.
한국에서 '주거'는 수십년간 학습된 재개발 공식에 따라 수익이 보장된 투자처로 존재해왔다. 높은 주거비 부담은 장벽이 되어 사람들을 공간적으로도 분절시켰다. 한번 넘어가기 어렵지만 들어가면 삶의 차원이 달라지는 세계로 가려고 많은 이들이 영혼까지도 끌어모아 대출을 한다. '의식주'라는 말이 의미하듯 주거는 먹거리, 의복과 같은 필수재 중 하나이자 '삶의 배경'이다. 최저수준 이상의 면적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 기후위기와 재난으로부터 안전하며 불안정한 계약으로 퇴거당할 걱정이 없는 곳. 그곳을 우리는 '집'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몇 채의 주거지가 공급되었는가'보다 '누구에게나 주거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는지'를 살펴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미 공동체 주택, 사회주택 등 다양한 실험이 작지만 의미 있게 행해지고 있다. 시민 삶의 기초를 보장하는 것이 주거정책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주거 공급만이 아니라 안정과 안전을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한 때다. 기후위기 시대, 안전하고 즐거운 나의 집을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그런 도시에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