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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 종 출 성주향교 장의 |
| ⓒ 성주신문 |
성주는 흔히 참외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지만, 성주엔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성주향교가 있다. 역사적으로도 성주는 유학의 전통이 깊은 선비의 고장이기도 하다. 그 중심에 성주향교가 있었다. 향교는 단순한 옛 교육기관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정신을 형성하고 인재를 길러낸 공동체의 학교였다. 성주향교 역시 조선시대 지방교육의 핵심기관으로 수백 년 동안 지역 유림의 중심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오늘 필자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성주향교가 과연 지금도 '사람을 사람답게 다듬어 바르게 키우는 곳'으로 살아 있는가!
향교의 존재는 매우 상징적이다. 공자를 비롯한 성현을 모신 대성전은 학문의 근원을 뜻하고, 명륜당은 학문을 닦는 공간이었다. 즉 향교는 제례와 교육이 함께 이루어지는 공간이었다. 단순히 제사를 지내는 곳이 아니라 사람을 양성하는 공간과 장소였다. 이러한 전통 속에서 성주향교는 지역사회의 도덕적 기준을 세우고, 유림의 학문적 교류의 중심지 역할을 해 왔다.
성주향교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심산 김창숙(1879~1962) 선생이다. 김창숙은 성주 출신의 대표적인 유학자이며 독립운동가로, 일제강점기 유림을 대표하는 지도자였다. 그는 성주에서 유학을 공부하며 성장하였고, 전통 유학의 정신을 바탕으로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자존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헌신했다.
1919년 3·1운동 이후 김창숙은 유림을 대표하여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보내는 '유림단 사건'을 주도하였다. 이는 전통 유림이 민족 독립운동의 전면에 나선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 일로 그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김창숙 선생은 독립운동가이면서도 동시에 유학자였다. 그는 유학이 단순한 과거의 학문이 아니라 나라와 사회를 바로 세우는 실천적 사상이라고 믿었다. 광복 이후 김창숙은 전통 유학의 현대적 계승을 위해 힘썼다. 그는 성균관의 재건과 조직 정비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며, 현대 성균관 체제를 만드는 데 중요한 기반을 마련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현대 성균관의 기틀을 세운 인물'로 평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창숙 선생이 보여준 유학의 정신은 매우 분명하다. 그것은 권위가 아니라 책임이며, 지위가 아니라 실천이었다. 선비란 벼슬이나 명예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대의 부조리를 바로잡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라는 것이 그의 삶이 보여 준 교훈이었다. 이러한 역사와 전통을 생각하면, 오늘날 성주향교의 현실은 매우 안타깝다. 향교는 본래 후학을 양성하고 지역사회의 도덕적 기준을 세우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지역사회에서 회자되는 일들을 보면 향교가 본래의 역할을 잊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후진 양성은 점점 약해지고, 향교의 운영이 일부 원로 유림들과 전 직장 퇴직자들의 폐쇄적인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향교가 지역사회와 단절된 채 내부의 명예와 자리만을 지키는 공간이 된다면, 그것은 전통의 보존이 아니라 전통의 소멸에 가까운 일이다.
향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것은 사람을 기르는 일이다. 사람을 키우지 않는 향교는 껍데기만 남은 건물일 뿐이다. 지금 성주향교가 해야 할 일은 과거의 권위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전통의 정신을 오늘의 시대 속에서 되살리는 것이다.
먼저 청소년과 젊은 세대를 위한 교육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향교는 본래 지역 인문교육의 중심이었다. 예절 교육, 인문 강좌, 지역 역사 교육 등을 통해 젊은 세대가 향교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해야 한다.
둘째, 지역사회에 열린 공간이 돼야 한다. 유림사회가 일부 관련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노소가 함께 어우러지는 공유의 장이 되어야 전통의 맥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향교가 일부 구성원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비판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주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문화와 학문이 함께 유지되는 공간으로 운영될 때 향교는 다시 지역의 중심이 될 수 있다.
셋째, 운영의 투명성과 공공성을 높여야 한다. 전통기관일수록 스스로 운영을 엄격히 돌아보아야 한다. 공정한 절차와 합리적 운영이 뒷받침될 때 향교의 권위도 자연스럽게 회복된다.
마지막으로 성주향교의 역사적 자산을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기록해야 한다. 심산 선생을 비롯한 성주 유림의 역사와 정신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널리 알리는 일도 향교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다.
전통은 저절로 존중받지 않는다. 그것은 시대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때 비로소 살아남는다.
한마디 사족을 붙이고자 한다. 향교의 운영자들은 유림이라는 그늘아래 노인들만 차지하는 명예의 자리가 아니다. 향교는 젊은이를 키우는 학교다. 향교가 후학을 기르는 본래의 기능보다 내부의 자리보전에만 치우쳐있다는 지적도 있다. 일보다 자리를 지키는 일에 더 관심이 있다면, 그것은 선비의 길이 아니라 노욕의 길이다. 심산 김창숙 선생은 나라가 위태로울 때 몸을 던졌고, 유학이 쇠퇴할 때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건물이 아니라 선비의 정신이다. 오늘의 성주향교가 그 정신을 잊는다면, 향교의 이름은 남아 있을지 몰라도 그 내용은 이미 사라진 것이나 진배없고 껍데기만 남아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부디 성주향교의 어른들께서는 자신에게 한 번 물어보시기 바란다. 지금 우리가 지키고 있는 것은 과연 전통인가 아니면 단지 자리인가. 만약 그것이 전통이라면, 그 전통은 반드시 사람을 길러내는 일로 증명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선비의 길이며, 성주향교가 다시 살아나는 길이기 때문이다. 성주향교가 다시 올곧은 선비의 전통을 이어주는 장소와 공간으로 남아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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