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사설 칼럼

"마을공동체의 전환이 곧 국가경쟁력이다" - 안병철

성주신문 기자 입력 2026.04.21 09:52 수정 2026.04.21 09:52

 

↑↑ 안 병 철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위원
ⓒ 성주신문

 

사회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위기는 기후변화와 지역 소멸의 가속화이다.

전국 228개 시군구 중 130개(57%) 시군구가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었고, 특히 농어촌 마을은 초고령화와 함께 공동체 붕괴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러한 위기의 기저에는 모순적인 중앙집중형 에너지 전력망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다. 농산어촌은 대규모 발전소와 송전탑 건설의 피해를 떠안으면서도 현대적 인프라 혜택에서 소외되어 겨울철이면 비싼 등유나 화목 보일러에 의존하는 '에너지 빈곤' 상태에 놓여 있다. 더욱이 탄소중립을 명분으로 추진되는 대기업 및 외부 자본 주도의 대규모 재생에너지 사업은 지역의 토지와 자연경관을 잠식하고 수익을 외부로 유출해 주민의 맹렬한 저항을 유발하고 있다.

그러나 마을은 이러한 위기 요소만을 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자원의 재구조화를 통해 새로운 자립 기반을 다질 수 있는 기회요소 또한 가지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과 지역 소멸 방지라는 두 국가적 난제를 해결하려면, 에너지를 마을 단위에서 자체 생산·소비하고 그 경제적 이익을 공동체 내부로 환원하는 '분산형 에너지 자립마을'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다행히 최근 국내 현 정부에서도 마을 유휴부지 등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하고 그 발전 수익을 주민과 공유하는 '햇빛소득마을' 정책을 전국적으로 확산하기로 하면서, 분산형 에너지에 기반한 마을공동체 전환을 이제 막 시도하고 있다.

유럽과 국내 마을들은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의 실증적 해답을 제시한다. 독일 펠트하임은 풍력·바이오가스·BESS(배터리 에너지 저장 시스템)를 결합해 거대 전력사로부터 독립한 100% 에너지 자립을 이뤘고, 상트페터는 주민 협동조합 주도의 산림 바이오매스 지역난방망을 구축했다. 프라이부르크의 보봉 지구는 플러스에너지하우스와 시민 거버넌스로 탄소중립 생태 도시를 구현했다.

국내에서도 자생적 에너지 공동체가 확산 중이다. 충남 홍성 원천마을은 가축분뇨로 전력을 생산, 전국 최초로 가축분뇨 기반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를 획득해 혐오시설을 탄소 자산으로 바꿨다. 충북 괴산 장암리는 산림 바이오매스로 소규모 열병합발전을 가동해 60가구 난방을 해결하며 지역 산림 순환 경제를 구축했다. 경기도 여주 구양리는 주민 전원이 참여한 '구양리 햇빛두레발전 협동조합'을 설립해 정부 저리융자를 활용, 1MW 규모 태양광발전소를 조성하고, 발생하는 수익(월평균 1,000만원 이상)을 무료 급식, 무료 마을버스 등 공동체 복지에 투명하게 환원하고 있다

이러한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이 농산어촌의 실질적인 회복 탄력성을 담보하고 국가 거시 경제망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려면 세밀한 전략이 요구된다.

첫째, 지역 특성에 맞는 '맞춤형 공간 인프라 설계'다. 축산이 발달한 농촌에서는 작물 재배와 연계할 수 있는 바이오가스를, 임야가 넓은 산촌은 산림 바이오매스를 적용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주택 옥상이나 마을 유휴 부지를 활용한 태양광 발전을 적극 도입하여 개별 가구의 에너지 비용을 절감하고, 전력 판매 수익으로 공동체 복지 기금을 창출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 또한 어촌의 경우에는 방파제나 부잔교 하부를 활용한 해상 태양광 시스템을 연계하는 등 지형적 한계를 극복하는 태양광 활용 전략이 필수적이다.

아울러 여름철 체감온도를 평균 2~3도 낮추는 효과가 입증된 마을 숲 등 그린 인프라를 통합 설계하여 기후 적응력을 극대화해야 한다.

둘째, 주민 주도 협동조합 육성을 통한 '자본의 내재화'다. 지자체는 초기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총사업비의 일정비율(40~60%)을 저리 융자나 보조금으로 지원하고, 법률·회계·기술을 아우르는 통합 컨설팅을 제공해야 한다.

셋째, 전력망 안정성을 위한 '디지털 융합'이다. 정부가 2026년까지 260억 원을 투입해 가상발전소(VPP) 통합 플랫폼을 개발 중이며 분산형 에너지 자원관리시스템(DERMS)의 시장 역시 본격적으로 성장할 전망인 만큼, 분산된 자원을 하나로 통합해 발전소처럼 제어하는 VPP와 유틸리티 배전망(동네 전선망) 수준에서 능동적인 전력 최적화를 돕는 분산형에너지자원관리시스템(DERMS)을 적기에 보급하여 마을 단위의 생산과 소비를 유연하게 통제해야 한다.

넷째, 획기적인 규제 완화와 부처 간 예산 통합이다. 기후부, 농식품부, 산림청 등에 분절된 생태 복원 및 경관 개선 사업 예산을 통합 기금화하여 중복 투자를 방지해야 한다. 또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을 바탕으로 특화지역 내 직거래를 허용하고, 주민참여형 사업에 대한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가중치 우대 등 제도적 인센티브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에너지는 스위치를 켜면 소비되는 일회성 상품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가 붕괴되지 않고 삶의 터전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사회적 안전망'이다. 분산형 에너지 자립마을 구축은 온실가스 감축이나 전기요금 절감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는 인구 유출로 시들어가는 농산어촌에 안정적 소득 창출 기회를 제공하여 청년을 다시 유입시키는 가장 본질적인 공동체 재생 사업이다. 나아가 에너지 생산 주도권을 국토 전역으로 분산시킴으로써 시스템적 전력망 리스크를 완화하고 국가 에너지 안보를 공고히 하는 첩경이기도 하다.

이제 정부 정책의 패러다임은 대규모 발전소 건설이라는 하드웨어 중심에서 벗어나, 마을 공동체의 역량을 키우고 자율적 변화를 이끄는 '거버넌스 중심'으로 선회해야 한다. 농산촌 주민들이 에너지 소비자에서 주체적인 생산자로 거듭날 때, 그리고 에너지를 자급하며 생태적 건강성을 회복한 수천 개의 '마을공동체'들이 국가의 모세혈관처럼 단단하게 연결될 때, 대한민국은 기후위기와 지방소멸이라는 파고를 넘어 진정한 회복 탄력성을 지닌 선진 국가로 도약할 수 있다. 지속가능한 마을, 그것이 다가올 미래의 가장 강력한 국가 경쟁력이다.



저작권자 성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