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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본능과 평화의 이성 - 석종출

성주신문 기자 입력 2026.04.21 09:55 수정 2026.04.21 09:55

 

↑↑ 석 종 출 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 이사
ⓒ 성주신문

 

인류의 역사는 문명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전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평화를 갈망하면서도 전쟁을 반복해 온 이 모순된 행태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설명하기 어렵다. 전쟁은 단순히 국가와 국가 사이의 정치적 충돌이 아니라 인간의 심리와 인류의 오래된 생존 방식이 결합 된 복합적인 현상이다. 심리학과 인류학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전쟁은 인간의 어두운 본성과 집단적 생존 전략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심리학적 측면에서 보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두 가지 상반된 욕망을 가지고있다. 하나는 협력하려는 욕망이고, 다른 하나는 경쟁하고 지배하려는 욕망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협력을 통해 생존했지만 동시에 제한된 자원을 두고 경쟁해 왔다. 이러한 경쟁의 본능이 집단 단위로 확대되면 전쟁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개인의 공격성이 집단의 정당한 행동으로 포장되는 순간, 폭력은 죄책감을 벗고 영웅적 행동으로 변하기도 한다.

또 하나의 중요한 심리적 요인은 '집단 동일시'이다. 인간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통해 정체성을 확인한다. 국가, 민족, 종교, 이념과 같은 것들이 바로 그 집단의 경계가 된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이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는 순간 갈등의 씨앗이 생긴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정당하고, 그들에게 가해지는 피해는 쉽게 정당화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상대 집단은 종종 인간성이 제거된 대상으로 묘사되며, 이러한 비인간화는 전쟁을 가능하게 하는 심리적 장치가 된다.

인류학적 관점에서 보면 전쟁은 더 오래된 기원을 가지고있다. 초기 인류 사회는 풍요로운 환경에서 평화롭게만 살아온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경쟁해야 했다. 사냥터와 물, 식량 같은 자원을 확보하는 문제는 곧 집단의 생존과 직결되었다. 작은 부족 단위로 살아가던 시대에는 다른 집단과의 충돌이 곧 생존 경쟁이었다. 인류학자들은 이러한 경험이 인간 집단의 문화와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고 본다.

실제로 많은 전통 사회에서 전투 능력은 공동체의 중요한 가치였다. 용맹함은 존경의 대상이었고, 전투에서의 승리는 집단의 명예로 여겨졌다. 이러한 문화적 기억은 시간이 흐르며 국가와 군대라는 제도 속에 재구성되었다. 현대의 전쟁은 훨씬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일어나지만, 그 밑바닥에는 여전히 오래된 생존 경쟁의 기억이 흐르고 있다.

그러나 전쟁이 인간에게 주는 피해는 그 어떤 재난보다도 깊고 치명적이다. 자연재해는 도시를 무너뜨리지만, 전쟁은 인간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지진과 홍수는 시간이 지나면 복구되지만, 전쟁은 세대와 세대를 넘어 상처를 남긴다. 인간이 만든 폭력이라는 점에서 그 파괴력은 더욱 근본적이다.

전쟁이 치명적인 이유는 단순히 사람을 죽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전쟁은 인간의 도덕적 기준을 뒤흔든다. 평소에는 금기였던 살인과 파괴가 전쟁이라는 이름 아래 정당화된다. 이러한 경험은 사회 전체의 윤리적 토대를 약화 시킨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폭력의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사회 곳곳에 남아 새로운 갈등을 낳기도 한다.

전쟁은 문명의 축적을 한순간에 무너뜨린다. 도시와 산업, 문화와 지식이 오랜 시간에 걸쳐 쌓여도 전쟁은 그것을 단기간에 파괴할 수 있다. 인류가 수백 년 동안 축적한 성과가 몇 년의 전쟁으로 사라지는 사례는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왔다.

더 큰 문제는 전쟁이 인간의 미래까지 잠식한다는 점이다. 전쟁은 젊은 세대를 희생시키고, 경제와 사회 구조를 왜곡시킨다. 전쟁 이후의 사회는 오랜 시간 동안 그 후유증을 겪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전쟁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세대 전체의 운명을 바꾸는 역사적 단절이 된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이러한 비극을 반복하는 것일까. 심리학과 인류학의 시선은 한 가지 공통된 사실을 보여준다. 인간은 전쟁을 할 수 있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협력과 공존을 선택할 수 있는 위대한 존재라는 점이다. 인류는 경쟁의 본능과 협력의 능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역사의 방향이 달라진다. 오늘날 인류는 과거 어느 시대보다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만약 전쟁이 다시 대규모로 일어난다면 그 피해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가 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위험성 때문에 많은 학자들은 인류가 전쟁을 더이상 선택할 수 없는 단계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한다.


전쟁의 문제는 인간의 마음의 문제이기도 하다. 집단의 공포와 분노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그리고 타인을 얼마나 인간으로 인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전쟁을 이해하는 것은 인간을 이해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인류는 오랜 세월 전쟁을 반복해 왔다. 심리학은 인간 안에 경쟁과 공격의 본능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인류학은 집단의 생존 경쟁이 그 기억을 오랫동안 문화 속에 남겨 놓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은 협력하고 공존하는 능력을 지닌 존재다. 오늘날 중동에서 높아지는 긴장은 이러한 인간의 양면성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특히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이란 사이의 충돌은 단순한 지역 분쟁을 넘어 세계 전체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만약 이 갈등이 장기전으로 확대된다면 그 피해는 특정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공동의 재앙이 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힘의 과시가 아니라 갈등을 멈출 수 있는 정치적 지혜이다. 군사적 충돌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상호 자제와 외교적 대화의 통로를 반드시 열어야 하며, 국제사회 역시 중재와 협력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전쟁은 언제나 시작하기는 쉽지만 멈추는 일은 어렵다. 그러나 인류가 진정으로 성숙한 문명이라면, 싸울 능력을 가졌음에도 싸우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전쟁을 멈추는 힘은 무기가 아니라 인간의 이성과 책임 있는 결단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지혜는 분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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