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 희 국 대구경북서예협회 사무국장 |
| ⓒ 성주신문 |
1960년대 초, 덕환은 가난하고 척박한 고향 마을을 위해 혼신을 다하던 한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의 열망은 하나였다. 고향을 외부 세계와 연결할 도로를 건설해 마을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는 것. 그는 이를 위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각종 서류를 준비하며 정부에 청원을 넣었다.
성주와 대덕을 잇는 지방도로 건설이 그의 첫 목표였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요구와 필요를 느낀 덕환은 청원 내용을 대구와 무주를 연결하는 대규모 도로로 확장하기로 결심했다. 서류는 보냈지만 답은 요원했다.
덕환은 결심했다. "조재천 장관님을 만나야겠다."
그는 내무부로 자리를 옮긴 조재천 장관실 문을 두드렸다. 장관실에 들어서자 중후한 풍채의 조 장관이 자리에서 일어나 덕환을 맞이했다.
"오셨군요. 먼 길 오신다고 고생하셨습니다."
"장관님, 저의 청원이 진척되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또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덕환의 목소리엔 절박함이 묻어났다.
조 장관은 깊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아저씨, 지금 정부가 지방 벽지에까지 투자할 여력이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국무회의에서 발의하고 건설부, 경제기획원 장관들과도 협의해보겠습니다. 아저씨의 숙원사업, 제가 도울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장관의 약속은 덕환에게 큰 희망을 주었다. 그는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격동의 4.19 의거로 들어선 민주당의 장면 내각도 5.16혁명이 일어나며 무너졌고, 조 장관 역시 자리에서 물러났다. 덕환의 마음은 무너졌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조 장관의 소개로 만난 경북도지사 박경원에게 마지막 기대를 걸었다.
경북도청으로 들어선 덕환은 박 지사 앞에서 진심을 담아 말했다.
"지사님, 저는 지난 10년간 이 도로개설을 위해 뛰어다녔습니다. 하지만 민간이 정부를 상대로 무엇인가를 얻어내는 건 한계가 있습니다. 도지사님께서 꼭 힘을 실어주십시오."
박 지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조 선생님의 노고는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지역 발전을 위해 헌신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 저희 경북도에서도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정부와 협의하며 꾸준히 노력하겠습니다."
덕환은 눈물을 글썽이며 박 지사의 손을 꼭 잡았다.
"감사합니다, 지사님. 이 도로가 우리 지역의 미래입니다."
한편, 대한민국은 격동의 도가니에 빠졌다. 자유당의 3.15 부정선거로 4.19 혁명이 일어났고,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했다. 새로 들어선 장면 내각은 정치적 갈등 속에서 무능함을 드러냈다. 그리고 1961년, 박정희 소장의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며 권력의 중심이 군으로 옮겨갔다.
이 격동 속에서도 덕환은 멈추지 않았다. 박 지사의 협조와 덕환의 끈질긴 노력이 서서히 정부의 관심을 불러오고 있었다. 대구-무주를 잇는 도로 건설이 승인이 날 것인가,
고요한 길 위에 석양이 깔렸고, 그는 속삭였다.
"이 길이 뚫리면 우리 마을을, 우리 사람들을 새롭게 연결할 것이다."
덕환의 열정과 신념은 점차 그가 꿈꿔온 도로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