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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사회종합

서촌(瑞村)의 아랫마을 ‘하서(下瑞)’→‘하서(下西)’

이채근 기자 입력 2007.04.22 15:26 수정 0000.00.00 00:00

일본천황 탄생기념식수 은행나무

일본천황 탄생기념식수 은행나무
최고시설 아름다운 전망의 해수탕

양남면 하서 1·3리

하서는 동대산 삼태봉(629m)이 동해를 향해 힘차게 뻗어 내리다가 아름다운 바다 경관에 넋을 놓은 듯 잠시 숨을 멈춘 끝자락에 위치한 마을이다. 하서는 양남면소재지로 행정, 교육, 상업이 집중한 양남의 중심이며, 동해의 맑고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청정해안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해안마을이다.

↑↑ 백사장
ⓒ 경주신문사

하서는 본래 서촌(瑞村) 가운데 아래쪽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서(下瑞)’라고 했다고 한다. 신라6부시대 금산가리촌에 속했던 양남일대를 서촌(瑞村)으로 불렀다고 한다. 지금도 ‘서동리(瑞洞里)’로 불리는 마을이 있고 이 일대(상계, 수렴 등)를 상서(上瑞)라고도 한다. 그리고 지금의 ‘환서리(環西里)’ 일대(석읍, 석촌)를 중서(中瑞)라고 하며, 하서는 그 아래에 위치했으므로 ‘하서(下瑞)’라고 불렀다. 월성원전이 있는 나아리 일대(나산)는 신라 석탈해왕의 탄생설화와 관련한 아진포(阿珍浦)로 ‘아서(阿瑞, 兒瑞)’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양남지역에는 서동, 하서, 환서, 신서 등 유독 ‘서’자가 들어가는 땅이름이 많다. 그러나 ‘서동(瑞洞)’을 제외한 나머지 땅이름은 모두 ‘서(西)’를 쓰고 있다. 이것은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마을 이름을 새로 지으면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으로 보인다. 바로잡아야할 일이다.

‘하서(下瑞)’ 마을이름 되찾아야

양남면사무소와 양남초등학교가 있는 하서(장테)를 하서1리, 하서거랑 북편 안 골짜기의 망정·오리골·후동을 하서2리, 양남초등학교 뒤쪽의 다래·애일을 하서3리, 하서거랑 북쪽 바닷가 진리를 하서4리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본래 하서거랑을 중심으로 남쪽은 하서1리, 북쪽은 하서2리로 나누었는데, 마을을 다시 분구하면서 1리를 나누어 3리, 2리를 나누어 4리로 분리했다. 따라서 1리와 3리는 본래 한마을이었고, 지금도 거의 한 마을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하서 1리와 3리를 묶어서 같이 취재했다.

하서1리는 양남면사무소 동남쪽 일대의 해안을 끼고 있는 상가 중심의 마을로 ‘장테’라고도 부른다. 193가구에 인구는 470명으로 약 20%가 농업, 나머지는 상업에 종사하고 있다. 바닷가지만 어업에 종사하는 주민은 없다. 이 마을 최고령자는 올해 98살의 김소봉(방기댁) 할머니로 바깥출입을 못할 정도로 기력이 쇠잔한 상태였다.

하서3리는 57가구에 100명(주민등록은 117세대 260명) 정도이다. 이 마을은 밀양박씨와 설씨들의 집성촌이었으나 지금은 다 나가고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 밀양박씨가 17가구, 설씨가 7가구 정도 살고 있다. 벼농사와 밭작물 등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고 특히 엄나무를 많이 재배하고 있다. 3리의 최고령자는 애일에 사는 올해 98살의 박은이(서동댁)할머니는 집안에서 생활하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고, 아직 음식도 잘 드시고 바느질을 할 정도로 건강하시다.

면소재지로 양남의 중심

하서(下瑞) 금산(金山) 가리촌장(加利村長) 지타(祗陀)공이 지금의 양남 일대를 ‘서촌(瑞村)’이라고 했는데, 이곳은 중서(中瑞)의 아래쪽이므로 ‘하서(下瑞)’라 불렀다고 한다. 양남면사무소, 양남초등학교가 이 곳에 있다. 하서장(下西場) 부근에 있는 마을로 ‘장테’라고도 부른다.

동제 해마다 음력 6월초순경에 날짜를 정하여 지낸다.
당목 약 200년 된 회나무로 하서장 북쪽에 있다.

다래 마을을 개척한 이가 마을이름을 지으려고, 높은 산에 올라가서 마을을 내려다보다가 깜박 졸았는데,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서 “너는 이 마을을 위해 마을 지형을 잘 살펴 반드시 달 이름을 따서 좋은 이름을 지어야 한다.”고 하여 곧 잠에서 깨어나 마을을 살펴보니, 마을의 지형이 마치 초승달 같은데, 어금니처럼 두 개의 돌이 박혀있었다. 그래서 마을이름을 ‘월아(月牙)’, ‘월하(月下)’ 혹은 ‘다래’, ‘달애’라 불렀다고 한다. 양남면사무소 서편에 위치한 마을이다.

지금은 마을 한가운데로 울산 간 우회도로가 나면서 지형이 많이 바뀌어 초생달 모양이 좀 일그러진 상태다. 어금니처럼 박힌 돌도 없다.

당목 본래 아주 오랜 소나무가 있었으나 1990년에 고사하고 그 옆에 있던 약 70여년 된 소나무를 당목으로 삼았다.
동제 해마다 동짓달에 날을 받아서 지낸다.

애일(愛日) 마을이 높은 곳에 있어 종일 햇볕이 들어오므로, ‘애일’이라 불렀다고 한다. 양남초등학교 뒷마을이다.

 
↑↑ 해수탕
ⓒ 경주신문사 

당목 수백년 된 소나무가 있었는데 지난해 재선충이 와서 베고 회나무를 심었다.
동제 매년 동짓달에 좋은 날을 받아 동제를 지낸다.

선정비 송림공원으로 옮겨야

 
↑↑ 불망비
ⓒ 경주신문사 

일본천황 탄생기념식수 양남초등학교 교문에 들어서면 큰 은행나무 2그루를 서 있다. 현재 일본의 천황인 아키히토(明仁)의 탄생을 기념하여 당시 이 학교 일본인 교장이었던 다니가와(谷川)가 심었다고 한다.

아키히토(明仁)는 일본의 제125대 천황으로 어릴 때 이름은 쯔꾸노미야(繼宮)였다. 쇼와천황의 1남4여 가운데 막내로 1933년 12월 23일에 태어났다. 이 은행나무는 일본관광객 유치에 적극 활용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경주로 수학여행을 오는 학생들에게도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적극 활용했으면 좋겠다.

↑↑ 선양비
ⓒ 경주신문사

선정비 경주부윤 이능섭을 기리는 영세불망비로 면민회관 안에 초라하게 서 있다. 본래 강변모텔 앞 회나무 옆에 있었는데 30여 년 전 도로를 확장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담장 옆에 서 있어 눈에 잘 보이지도 않고 배전반과 각종 도구들이 어지럽게 늘어져 있어 보기에 안타깝다. 마을 공원을 깨끗하게 다듬었으니 그곳으로 옮겨 많은 사람들이 보도록 함이 좋을 듯 하다.

6·25참전유공자 명예선양비 이 지역 출신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유공자를 기리기 위해 2005년 6월에 해안공원에 세웠다.

 
↑↑ 은행나무
ⓒ 경주신문사 

가운데 자연석으로 된 비석을 세우고 양쪽에 설치한 까만 비석에는 500여명의 참전용사와 월남전에 참가한 파월장병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송림공원 하서 바닷가에 2005년에 조성한 이 공원에는 6.25참전비와 인어상이 서 있다. 인어상은 양남초등학교 김진석 선생 외 2명이 제작했으며 월성원전에서 후원했다.

해수탕, 찜질 헬스 음악 휴게실까지

↑↑ 당목
ⓒ 경주신문사

해수탕 맑고 짙푸른 물결 넘실대는 동해가 훤하게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바닷가에 목욕탕, 찜질방, 휴게실, 체력단련실, 음악실 등 최신시설을 갖춘 해수탕이 4월 개장을 앞두고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총 120억원을 들여 건평 1천500평, 지상 4층으로 건립되는 이 해수탕은 한 층이 370평 규모로, 1층 휴게실, 2층 여탕, 3층 찜질방, 4층 남탕이 배치되어 있다. 해수탕 옆에는 관광객들이 편안하게 휴식할 수 있는 펜션 2동이 18실 규모로 지어져 있다.
사잇고개 다래에서 범실로 넘어가는 고개로 아주 가파르다.
질기미 호린골 서쪽에서 신서리로 질러가는 고개라 질기미라고 했다.
유지릿등 유지릿골 위에 있는 등성이.
한박등 지형이 마치 커다란 박덩이처럼 생긴 등성이이다.
호린골 애일 서쪽에 호롱처럼 생긴 골짜기, ‘호롱골’이라고도 한다.
수풀골 숲이 울창한 골짜기로, 유지릿골 서쪽 범실에 있는 골짜기.
아람짓골 범실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유지릿골 범실골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가지리 다래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생긴 모양은 가지처럼 생겼다.
대마딧골 대나무 마디처럼 생긴 질기미 서쪽에 있는 골짜기.
범실골 다래 서쪽에 범이 살았다는 골짜기로, 범이 누운 형국으로 생겼다고도 한다.
복지밧골 형세가 복(福)자처럼 생긴 질기미 동쪽에 있는 골짜기.

양남에서 가장 큰들

가질들 뒷마을 동쪽에 있는 들. 가지리골 들어가는 골짜기 앞에 있는 들이다.
귀밋들 하서큰들 서쪽에 있는 들. 까막등에서 내려온 모양이 구이(귀이)처럼 생겼다.
범실들 범실골에 있는 들.
서신개 하서 동쪽 갯가에 있는 들. 지금의 해수탕이 들어선 일대의 들판으로 지금은 해수탕으로 단장했다.
집앞들 애일 앞들로 마을 앞에 있다고 붙인 이름이다.
큰들 면사무소 뒤에 있는 들로 양남에서 가장 큰 들이다.
만딧들 애일 뒤의 산만디(마루)에 있는 들.
큰들 하서 북쪽에 있는 큰 들.
귀밋보 귀밋들에 있는 보로, ‘궁잇보’라고도 한다.
큰들보 하서 큰들에 물을 대는 보로 하서보라고도 한다.
범실겉못 범실골 겉(바깥쪽)에 있는 못. 해방 후에 막았다.
범실안못 범실골에 있는 못. 일제 때 막았다고 한다.
부락케 하서 동쪽 바닷가로 해안의 모래사장을 ‘부락케’라고 한다.
하서장(下西場) 하서에 있는 장으로 4일, 9일에 선다.

효동 골프장 건립은 절대 안돼

 
↑↑ 인어상
ⓒ 경주신문사 

재래시장의 건물이 오래되고 낡아 장옥을 새로 지어야 한다. 또 4일, 9일에 열리는 5일장을 상설시장으로 개설해 상가를 활성화했으면 한다.

또 해안도로와 중앙도로간 연결도로가 없어 불과 50m정도 밖에 안 되는 거리지만 연결되지 않아 여간 불편한 게 아니라고 한다. 학교에서 나오는 길을 바닷가까지 연장해 연결하면 된다.

해안 모래가 하서4리 진리에 방파제를 건설하고 난 후부터는 모래가 자꾸 쓸려 나가 해안의 유실이 심하다. 현재 모래사장이 1.5m 정도 낮아졌다.

하서는 동대봉산에서 하서거랑을 통해 흘러내리는 맑고 깨끗한 물과 청정해역으로 손꼽히는 동해안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많은 피서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지역이다. 그러나 인근지역에 월성원전과 방폐장, 마우나오션골프장 등 환경오염 요인이 생기면서 환경오염은 물론 이미지마저 나빠져 관광객이 줄어들어 걱정하던 터에 최근 마을 상류인 효동지역에 골프장을 조성한다는 소문까지 있어 주민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일대 주민들의 식수원이며 양남면민들의 허파에 해당하는 효동골만은 오염되지 않아야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반대 현수막을 곳곳에 내걸고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골프장이 들어설 경우 해당 수계의 아래 지역은 수질오염으로 인한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고향마을 어른 효도관광

송영창(77·부산 주공 사장), 김홍만(58· 대구 동부도서관장), 문종걸(58·대구 북구청 총무국장), 오병환(59·부산 남양철재), 박기우(57·경기 화성 우성플랜트산업), 최병열(49·경제학 박사) 등이 이 마을 출신이다. 특히 우성플랜트산업의 박기우 사장은 지난해 고향마을 노인 80여명을 경기도 위원으로 1박2일간 효도관광을 시켜드려 마을주민들의 칭송을 받고 있었다.
취재에 협조해 주신 이진희 노인회장님과 1리 임장춘 이장님과 장주연 부녀회장님, 3리 박철호 이장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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