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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사회종합

아아 님은 가지 않았습니다.

이채근 기자 입력 2007.04.22 15:37 수정 0000.00.00 00:00

경주문단

경주문단
아아 님은 가지 않았습니다.

ⓒ 경주신문사


이 채 형
소설가

그대, 왜 왔나요?

1.
백담 계곡에 들어서자 만해(萬海)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왼편으로 굽이굽이 병풍처럼 둘러친 벼랑과 계곡이 이어지면서 물과 바위와 수목이 빚어내는 절경이 펼쳐졌다. 그의 시선이 그중 한 곳에 취한 듯 머물러 있었다.
“스님, 잠시 쉬어가시렵니까?”
그를 모시고 따라온 상좌 춘성이 물었다.“
“그래, 다시 백담이로구나.”
만해의 음성이 적이 가라앉아 있었다. 새벽 아침 외설악의 안양암을 떠날 때부터 스승의 모습은 눈에 띄게 고즈늑해 보였다.
사실은 경성을 떠나 신흥사로 내려와 안양암에서 한 달여 요양을 하는 동안에도 만해는 전에 없이 조용한 편이었다. 내심 무엇인가 정리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암자에 와 있던 여연화(如蓮華) 보살이 어느 날 물었었다.
“스님 기운이 없어 보이십니다.”
“항우 장사도 아닐진대 내게 무슨 기운이 따로 있겠소.”
“그래도 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전에 그렇지 않아 보였다면 그게 이미 허상일 뿐이오.”
만해의 대꾸에 여연화는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기대보다 훨씬 무거운 대응 탓이었다.
“늘 본래면목을 지니는 일이 어찌 수월한 일이겠소.....”
뒤이어 혼잣말처럼 뇌까리는 만해의 말에는 깊은 여운이 스며있는 듯 했었다.
이제 백담 계곡에 들어서면서 춘성은 스승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곳은 일찍이 스승이 입산의 첫 발을 들여놓은 곳이 아니던가. 그리고 이곳 백담사에서 득도를 하고 , 계를 받고, 경을 익히고, 마침내 도를 깨우친 곳이 아니던가.
그런 곳을 오랜만에 다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것도 3년이라는 오랜 옥고의 뒤끝이었다. -계속-

(만해 한용운 전기소설 ‘아아 님은 가지 않았습니다.’ 일부 -이채형 지음, 문학나무 간)

약 력

1946년 경주 출생.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1984년 '소설문학' 신인상에 '겨울 우화'가 당선하여 등단.
1999년 소설집 '동무' 출간.
2006년 장편소설 '아아 님은 가지 않았습니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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