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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사회종합

보리밥 생각

이채근 기자 입력 2007.04.30 10:54 수정 0000.00.00 00:00

교육칼럼

교육칼럼

보리밥 생각


꽃시샘하는 날씨가 변덕스러워도 계절은 못 속이는가 보다. 5월이 되면 남녘 들판은 벌써 연초록 파도가 일렁이고 봄 바람 한 줄기가 보리밭이 색깔을 뒤채이며 사람들을 들녘으로 이끌어낸다. 지금은 보기가 뜸하지만 보리밭 위에 휘돌며 노래하는 노고지리(종달새)의 숨가쁜 울음이 온들판을 깨우니 늦은봄의 보리밭은 한 폭의 그림이요 자연의 작품이다.
가을에 씨를 뿌려 긴 한동(寒冬)에 벌판에서 겨울을 나고 눈이 많이오면 보리엔 이불이라 하여 풍년을 예고한다.
보리밭의 장관(壯觀)은 보리 이삭이 파랗게 뻗어나는 5월초순부터 수확이 시작되는 6월 초순경인 망종 절기 지나면 절정을 이룬다. 보리밭이라고 해서 낭만만을 보듬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거기에는 파랗게 자라오르는 보리 줄기가 빨리 수확되기만을 기다렸던 가난한 시절의 서글픈 애환도 추억과 함께 배어있다. 우리는 그러한 세월의 30~40년 전을 까맣게 잊어왔다. 쌀기가 거의 없는 보리밭은 찰기가 없어 파삭파삭하고 오돌오돌하다. 그밥이라도 배불리 실컷 먹는게 소원이었던 때에 살았던 지금 50대 이상의 사람들에겐 하얀 쌀밥은 늘 꿈에 불과했다.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면서 보리밥이 밥상에서 점차 멀어지고 추방 시킨것도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의 기억을 잊어버리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보리고개라고하는 배고픈 시기가 온 백성을 괴롭히고 한으로 남아 있을 때에는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 당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이냐?
1990년대 들어서자 보리는 그 위상이 복권되고 그 지위마져 격상되고 말았다. 가난의 대명사로 지긋지긋하게 여기던 천덕꾸러기가 아닌 특식의 별미로 국민 모두가 즐겨찾는 건강음식으로 보리밥 전문점이 생겨나고 점심시간이면 식당앞에 줄을 설만큼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요지마다 꽁보리밥집이 생겨나고 서로가 원조요, 시조요 본점이라고들 내세우는 간판이 늘고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식당에서 음식을 시켜놓고 나올때까지 재촉이 심한 편인데 그런 사람일수록 보리밥 집은 안성맞춤이다. 뜨끈뜨근한 보리밥 한 사발에 풋고추 충충 썰어넣은 된장찌개와 푸성귀 향기가 감칠맛 나는 미나리 썰은것 그리고 몇가지 봄나물과 고추 찍어먹을 장이면 푸짐하다. 보리밥은 정갈하게 품위를 지켜 먹는 것보다 조금 게걸스럽게 먹는것이보기도 좋고 맛이 더난다. 다 먹고 나서약간 매운듯 입과 속이 얼얼할 땐 구수한 숭늉으로 입가심을 하면 매운맛이 개운해진다.
현대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으로 암과 각종 성인병 그리고 장 질환의 이상 증세를 말하는데 보리밥이 이 세가지에 다 효능이 있는 항암 물질이 함유되어 있다고 한다.
쌀밥이 성인병의 온상이라고 해도 쌀밥에 길들여진 우리의 입맛에 보리밥 먹기가 깔깔하고 보기에도 별구미가 당기질 않는다. 그러나 일단 입맛을 들여 놓으면 구수하고 찐득 찐득한 맛이 물리지 않고 반드시 된장과 함께 먹어야 제맛이 나니 정말 건강식으로는 최고이며 한국적이다.
싱그러운 바람과 풋풋한 보리 내음이 온 들판을 뒤덮을 때쯤 고향떠나 객지 생활하는 서러운 인생들에게는 보리밥 냄새와 먹고싶은 식욕이 바로 향수요 추억이요 고향이다. 보고싶은 어머니 생각이 간절한 저녁녘이면 가난과 눈물과 보리밥으로 연명해 왔던 어찌 그맛을 잊겠는가. 얄궂은 운명을 타고 살아오신 조상님들에게 깊은 경의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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