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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사회종합

라면을 끓이면서

이채근 기자 입력 2007.05.06 18:20 수정 0000.00.00 00:00

교육칼럼

교육칼럼

라면을 끓이면서


나는 라면을 좀 좋아하는 편이다.
저녁시간이 늦어지는 오후가 되고 야구중개방송이라도 있는 날이면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나 혼자만의 비법으로 라면을 끓여 먹는다. 팔팔 끓는 물에 묵은 김장 김치도 넣고 대파를 썰어 넣어 제법 얼큰하게 해서 먹는다. 각종 조미료가 들어가고 마지막에 라면 봉지를 털어 넣었을때 라면 풀어지는 냄새는 언제나 매력이 있고 구미가 당긴다.

주식이 아니고 대용식으로 먹는 것이라서 한 봉지면 그만이다.
라면의 원조는 중국이고,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상륙한 것이 1963년 쯤이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이라 더더욱 친근감이 있고 그때 그 맛의 정취는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라면맛의 차이는 어떤 종류의 기름에 면을 튀기는냐에 따라 다르고 요리하는 과정에 따라 맛의 정도가 다르다.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왔을때는 일본사람의 입맛에 맞추다보니 기름기가 강해서 느끼하게 여겨졌다,

그래서 우리의 식탁에 자리잡기가 좀 더디었는데 바로 우리의 취향에 맞게 개조되어 한국사람의 입맛을 사로잡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10여년이 지난 세월이었지만 밀가루에 계란과 소금을 넣어 반죽하여 기계에 밀어 꼬불꼬불한 모양의 국수가 전국에 퍼졌다. 지금 나이 50세 이상이면 라면은 가난했던 시절의 추억으로 과거를 생각게하는 음식이라, 구수한 냄새와 쫄깃 쫄깃한 면의 감촉을 잊을수가 없다.
벌써 일본에서는 50년대 후반에 역시 가난했던 시절의 대용식이 인스턴트 라면인데 라면이란 말 자체는 중국에서 건너온 것이다.

중국과 일본보다도 늦게 자리한 라면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국민성과 흡사하고 잘 조화되어 그 인기가 기하급수적이었다.

바쁘고 급한 우리의 생활에 크게 복잡하지 않고 10여분만 끓이면 되고 더 급한 사람은 끓는 물만 부어 3분만 기다리면 되기도 하는 음식이다.

가난한 서민들에게는 애용의 가치가 컸으며 서울 아시안 경기 때 200미터 경주에 우승한 어느 여자선수의 우승소감에서 “라면이라도 실컷 먹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서 한동안 유행이 된적이 있다.

그 선수의 라면은 바로 헝그리 정신의 상징이 되었고 가난한 자의 주식에서 간식 그리고 미용식으로 또 다시 건상 식품으로까지 알려졌다.

세계에서 라면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는 한국과 일본이다.
두 나라의 라면 문화가 전후의 가난과 배고픔에서 시작된 만큼 배고픈 시절 라면에 얼킨 비화가 많다.

요즘에는 경제적 성장과 풍요에 발맞춰 라면도 점차 고급화되어 가고 있다. 소비자의 입맛이 높고 까다로워서 우리의 향토 음식인 잔치국수의 인기를 능가하고 영양가면에서도 절대 뒤지지 않을만큼 높아졌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의 입심은 과거로 돌아가는 법인가보다. 오늘도 라면을 한 냄비 끓이면서 가난했던 시절의 기억들이 생각난다. 그때는 어딜가나 지긋지긋하게 따라 다녔던 가난...예전에 꿈도 꾸지 못했던 생활을 하고 있는 오늘을 살면서 늘 감사함을 잊지 말아야겠다.
“라면이라도 실컷 먹어보았으면”
불과 얼마 전의 일이었다. 더욱더 아끼고 근검절약하여 그 시절의 아픔을 기억하며 열심히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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