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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사회종합

의심의 죄

이채근 기자 입력 2007.05.14 14:33 수정 2007.05.14 02:36

수필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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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병 환
수 필 가

의심의 죄

ⓒ 경주신문사

친구들과 모임을 약속한 날이라 시간에 맞추어 집을 나왔다. 그때 마침 사십대로 보이는 낯선 두 사람이 우리 집 모퉁이 양지바른 곳에 쭈그리고 앉아 우리 집을 바라보며 소곤소곤 정답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이래저래 집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 무엇을 공모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며칠 전 대낮에 이웃에 사는 권씨 집이 털렸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마침 아내는 어제 친구들과 함께 멀리 여행을 떠났고, 나 혼자 집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온 모양이다. 내가 나가고 난 다음에 슬쩍 하려고 모의 공작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놈들 두고 보자. 며칠전 처럼 쉽게는 되지 않을 걸. 내가 집을 비워주기를 기다리는 모양인데, 지금 집을 나가기는 해도 영영 나가는 게 아니고, 네 놈들이 무얼 하는가를 저기서 감시하고 있을 게다. 그럼 너희는 어떻게 되는지 알지. 이웃집에서 도둑맞은 것까지 몽땅 물어주는 것은 물론이요 콩밥을 먹어야 할 게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그들이 잘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서 은신해 있었다.

친구들과의 모임은 휴대폰으로 급한 일이 생겨 못 가게 됨을 사과하고, 그들의 동정을 살폈다. 오 분, 십 분이 되어도 꼼짝 않고 그 자리에 앉아 우리 집과 앞집을 보며 꼬챙이로 땅바닥을 그리고 있었다. 내가 집을 비웠다는 것을 아는데, 저놈들이 왜 행동을 개시하지 않을까. 저놈들이 내가 여기 숨어 있다는 것을 알고 저렇게 늑장을 부리는 구나 싶어 조금 더 멀리 나가 숨었다.

또 십 분이 지나도 꼼짝 않고 그대로 앉아 무엇인가 얘기만 하고 있었다. 그러자 어떤 건장한 사내가 자전거를 타고 그들 앞에 다가갔다. 그 두 사람은 그를 반갑게 맞아 묵직해 보이는 양철통을 자전거에서 내렸다. 옳지 이재 저 세 사람이 짝짜꿍이가 되어 일을 시작하려나 보다 생각했다.

느긋한 마음으로 이제 올 것이 왔구나 싶어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그때 오줌통이 내게 다급한 명령을 내렸다. 벼락같이 언덕 옆에 가서 볼일을 보면서도 그들을 살폈는데, 아차 하는 순간 그들의 행방을 놓치고 말았다. 어디로 갔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면서도 제깐 놈들이 가면 어디 가겠는가. 일껏 가야 우리 집일 테지 하고, 서서히 걸음을 옮겼다.

요놈들을 어떻게 잡지. 상대는 셋인데 나 혼자 어떻게 처리 하나 싶어 걱정이 앞섰다. 잘못 하다가는 나만 진탕 터지는 게 아닌가 싶어 겁이 났다. 경찰을 부를까 하는 생각에 핸드폰을 꺼내 들고 어쩌나 하는 순간에도 걸음은 자꾸 집으로 가고 있었다.

집 모퉁이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의 다정한 웃음소리와 얘기소리가 나기에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조금 전에 본 두 사람이 각각 페인트 통을 들고 우리 앞집 지붕 위에서 페인트칠을 하고 있었다.

나는 너무도 어의가 없어서 그들을 바로 처다 볼 수가 없었다. 그들이 볼세라 고개를 숙이고 벼락같이 방으로 들어갔다. 쫓기는 죄인처럼. 그때 나는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선량한 페인트공 부부를 의심하다니.

페인트 배달을 기다리면서 오늘 일과를 계획하고 있었던 사람들을 덤터기 씌우려고 했으니 내가 콩밥을 먹을 놈이 아니던가.

앞집 지붕에 올라앉아 페인트칠을 하면서 우리 집을 잘 감시해 주었을 텐데, 그들을 도둑으로 몰다니. 비록 잠시 나마 남을 의심하였다는 것이 여간 죄스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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