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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사회종합

선덕여왕 행차한 나왕대(羅王臺)에서 ‘사라(舍羅)’

이채근 기자 입력 2007.05.20 11:50 수정 2007.05.20 11:53

절반이 65세 이하 젊은 사람 많아

선덕여왕 행차한 나왕대(羅王臺)에서 ‘사라(舍羅)’
절반이 65세 이하 젊은 사람 많아

서면 사라리(舍羅里)

↑↑ 당목
ⓒ 경주신문사

벌써 여름의 문턱에 한발 들어선 것 같다.
산천이 푸르름을 더해가고 있고, 긴소매가 거추장스럽게 여겨진다.
사라마을 어귀의 진밭들에 다 자란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고, 못자리에는 다 자란 모들이 출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라는 경주시 서면지역으로 서라벌공원묘원 아래에 위치한 마을이다. 지난 90년대 한우의 원인모를 집단폐사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던 마을이기도 하다.

경주에서 새로 난 경주~영천 간 국도 4호선을 타고 영천방면으로 약 20km 지점에 이르면 ‘서라벌공원묘원’과 ‘사라리’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내리면 동쪽으로 산기슭에 300호에 이르는 제법 큰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가 경주시 서면 사라리와 운대리가 한 마을처럼 옹기종기 어울려 있는 곳이다.

마을 어귀의 두 갈래 길 가운데 오른쪽, 서라벌공원묘원으로 가는 길을 기준으로 그 오른쪽은 운대, 왼쪽이 사라이다.

사라는 남쪽은 한마을을 이루고 있는 운대에 내어준 채, 서쪽은 아화와 심곡, 남쪽은 도계, 북쪽은 도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사라는 주로 논농사에 의존하고 있고, 포도와 버섯, 한우, 젖소, 말 등을 기르고 있다. 포도는 13가구가 1만여 평을 경작하고 있고, 표고버섯 5동, 한우 5가구 80두, 젖소 4가구 150두, 말 30두를 기르고 있다.

사라는 170가구에 남자 214명, 여자 204명으로 총 418명의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다. 경주이씨(21가구), 영천이씨(20가구)가 많은 편이지만 다양한 성씨들이 어울려 살고 있다. 마을주민 가운데 65세 이하가 48%로 다른 마을에 비해 젊은이들이 많은 편이다.

당목 마을 어귀에 조성된 숲에 있는 100여년 된 느티나무이다. 본래 이곳에는 큰 고목의 당나무가 있었으나 어느 때 누가 베어서 팔아먹었다고 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 사람은 그 일로 죽었다고 한다. 지금의 당나무는 그 옆에 있던 느티나무를 후계목으로 정한 것이다.

동제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에 동제를 지낸다.
↑↑ 야음서사
ⓒ 경주신문사


‘마을 크게 번창하라’

사라(舍羅) 마을이 크게 번창하라는 뜻에서 ‘사라’, ‘사라골’ 이라 불렀다고 한다. 옛날 신라 선덕여왕이 행차했던 것을 기리기 위해 세운 ‘나왕대(羅王臺)’를 마주보고 있는 마을이라 ‘사나’, ‘사나골’, ‘사라’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다. 나왕대는 부운대에 있던 연꽃무늬가 새겨진 좌대로 운대에 있었으나 1973년도에 잃어버렸다. (160가구)
갠버불 ‘경부(境阜)’라고도 하며, 오통골의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8가구)
오통골 다섯 집이 산다고 오통골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4가구만 살고 있다.

‘지극한 효행으로 동몽교관에 추증’

도뭇골 사라의 서남쪽에 있는 등성이로, 이 근처에 고려장이 많았다고 한다. 지금은 자동차 부품업체인 명성이 들어서 있다. 공장이 들어설 때 이곳에서 많은 유물들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안갓 사라의 앞쪽에 있는 안산을 말한다. 산을 갓이라고도 했다.
서낭재(골안재) 성황당이 있었던 곳으로 골안에서 도리의 중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등말재 사라에서 도리의 상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장자골재 사라에서 심곡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장자골 위에 있다.
야은서사(野隱書舍) 경주인 야은 이월서(李 瑞 1797~1867)가 후진양성을 위해 지은 서사로 전해오고 있으나(경주문집해제) 현재 야은서사에 있는 기문에 따르면 1872년에 지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어 최소한 5년 이상 시차를 보이고 있다. 지금의 건물은 오래되어 허물어진 것을 1980년대에 후손들이 다시 세운 것이다.
야은공은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행으로 사후에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추증되었다. 야은서사는 맛배지붕의 4칸 건물로 가운데 2칸은 마루, 양쪽은 방을 배치했다.
골안 사라마을 안 골짜기로 고을 안이라는 뜻이다. 사라못의 안쪽에 있는 골짜기로 이 마을에서 제일 넓은 골짜기이다.
독잣골 사라의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독조골’, ‘독자곡’이라고도 한다. 옛날에 이곳에 혼자 사는 사람이 있어 ‘독자골’이라고 했다.
부처골 옛날 이곳에 청동불상이 나와 부처골이라고 한다.
장자골 옛날에 장자(부자)가 살았다고 하는 골짜기로, 사라 서북쪽에 있다.
진골 사라와 심곡리에 걸쳐 있는 긴 골짜기, ‘장곡(長谷)’이라고도 한다.

소나무 줄지어 있어 ‘줄소남밭’

밀기밑들 솔배기 서쪽에 있는 들이다.
새못들 밀기밑들 서쪽의 새못이 있는 들을 말한다.
줄소남밭 소나무가 줄지어 많이 있었던 곳으로 밀기밑들 남쪽에 있다. 그러나 지금은 소나무가 없다.
진밭들 솔배기 서남쪽의 긴밭이 있었던 들. 지금의 사라 나들목이 있는 들이다.
큰산밭 마을회관 뒤쪽에 있는 밭. 본래 큰 밭이었는데 지금은 많은 도가리로 갈라놓았다. 옛날에 소 쟁기로 고랑을 지어 갈랐다고 한다.
독잣골 못 독잣골에 있는 못이다.
사라못 사라의 북쪽에 있는 못으로 본래 있던 작은 못을 70여 년 전에 수리해 지금의 규모로 막았다.
새못 새못들에 새로 축조한 못으로, 길가에 있다고 ‘질못’이라고도 한다.
진골못 진골에 있는 못이다.

약국집 논 많아 ‘약국보’

냉천보(冷泉洑) 찬물내기에 보를 막았기 때문에 ‘냉천보’라고 했다. 종강보의 서쪽에 있다.
약국보 줄소남밭의 동쪽에 있는 보로, 옛날 약국을 하던 사람의 논이 많아 약국보라고 한다.
어금보 밀기밑들의 북쪽에 있는 보로 ‘얼금보’라고도 한다.
종강보(宗江洑) 길이가 8km에 이르는 긴 보로 황보의 북쪽에 있다.
황보(黃洑) 황씨 성을 가진 이가 만들었다고 하는 보. 솔배기 서쪽 종강보 밑에 있다.
솔배기 사라 서남쪽 어귀의 들로, 전에 큰 소나무가 있었으나 지금은 소나무가 없고 느티나무만 있다.
지냇거랑 골안에서 발원해 남쪽으로 사라마을을 지나 오통골 앞에서 큰 내에 합수되는 거랑이다. ‘장천(長川)’이라고도 부른다. 마치 지내처럼 생겼다고 한다.


주민숙원사업 없는 마을

이 마을은 주민들이 특별히 바라는 숙원사업은 없다고 한다.
이 마을 최고령자는 정석남(96·선동댁)할머니로 아직까지 남의 도움 없이 혼자 생활하실 정도로 건강하시다. 아무거나 잘 자시고 술과 담배는 하지 않는다는 할머니는 “너무 오래 살아서 심심하다. 빨리 죽어야 되는데 안 죽어 큰일이다”고 하시며 찾아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이 마을 출신으로는 이경수(78·전 아화농협 조합장), 최병호(69·전 도의원), 이열우(68·예비역 육군소장), 이기호(62·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 이경우(53·부산 전포지구대장), 문재근(52·변호사), 이상준(44·대구지방법원 판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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