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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사회종합

이차돈 순교비와 술탄 무하마드2세

이채근 기자 입력 2007.05.20 11:52 수정 2007.05.20 11:54

문화재산책

문화재산책

이차돈 순교비와 술탄 무하마드2세

ⓒ 경주신문사

음력으로 사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날이 다가오면 꼭 가고 싶은 곳 중에 빼 놓을 수 없는 곳이 국립경주박물관 미술관 1층에 전시되어 있는 이차돈 순교비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도 잘나와 있지만, 백율사에서 전해진 이차돈 순교비의 조각을 보면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이차돈의 순교 상황을 아주 사실적으로 예술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경주박물관 미술관을 찾을 때마다 난 한동안 그 앞에서 숨을 멈추고 바라보곤 한다.
그런데 간혹 ‘정말 이차돈이 순교할 때 이 조각그림처럼 목에서 하늘로 우유빛 피가 솟아오르고 꽃비가 내렸을까? 사실하고는 다른 과장된 표현이 아닌가?’ 하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을 땐 참 난감하다. 종교적 신앙심으로 바라보면 사실 그대로의 기적이라고 믿고 싶고 조각예술가 입장에선 이차돈 순교의 전설을 가능한 사실적으로 표현했다고 보고 싶다.

중세 르네상스시대 서양 화가의 일화에서 이차돈 순교비와 유사한 내용의 글이 있어서 유심히 몇 번이나 반복하여 읽어보고 바로 경주박물관으로 달려가 이차돈 순교비를 감상하곤 했다.

1453년 5월 29일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술탄 무하마드 2세에 의해 함락되면서부터 도시이름이 이스탄불로 바뀌었고, 지중해 상권에 위협을 받은 이탈리아 해양강국 베네치아와 터키간에 긴 전쟁이 터졌고, 그 후 16년간의 전쟁 후 정전 및 강화조약이 맺어지면서 베네치아를 찾아온 터키 사절단을 통해 술탄 무하마드 2세는 베네치아에서 가장 우수한 화가 한 분을 보내달라고 요청하였고, 베네치아는 문화사절로 당시 베네치아에서 가장 뛰어난 화가인 젠틸레 벨리니를 터키에 파견한다.

ⓒ 경주신문사

무하마드 2세는 이 벨리니의 화풍에 만족했고, 벨리니는 후한 대우로 많은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무하마드 2세가 젤리니가 그린 세례자 성요한의 참수된 목의 그림을 보고는 칭찬을 한 후에 한가지 잘못된 것이 있다고 말한다.

젤리니의 성요한 참수장면 그림(이차돈 순교비 조각과 비슷하게) 에는 목의 혈관과 신경이 밖으로 뛰어나온 것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실제 사람의 목이 참수된 이후에는 반동으로 혈관과 신경이 목의 안쪽으로 움츠러드는 법이라고 술탄이 말하자 천재적인 화가 젤리니는 조금 기분이 상해 응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술탄 무하마드 2세는 몸종을 시켜 노예를 한명 데려오게 한 뒤 벨리니가 보는 앞에서 그 노예의 목을 베었다고 한다. 눈 앞에 벌어진 광경은 술탄의 말대로 목의 혈관이 안쪽으로 오그러들자 벨리니는 충격을 받았고 얼마 뒤 베네치아로 되돌아 갔다는 일화가 있다.

중세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의 대표적인 화가 벨리니도 오스만투르크의 술탄 무하마드 2세의 그 섬세한 관찰력 앞에는 두 손을 들었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젤리니와 무하마드의 일화보다 1천여년 앞서 신라왕국 서라벌 흥륜사 마당에서 벌어진 이차돈의 순교 현장을 정확하게 본 사람의 그림은 없지만 이차돈 순교후 약 290여년이 지난 서기 818년에 만들어졌다는 이차돈 순교비 조각을 보면서 현대의 과학적인 사고와 예술가의 표현력 그리고 종교적 신비적인 현상에 대한 긴 상념에 빠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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