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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내 아들, 사랑한다” - 故 김선명 상병 아버지 김호엽씨

이성훈 기자 입력 2010.06.08 08:57 수정 2010.06.08 08:57

내 일처럼 걱정해 주셔서 너무 감사해/좋은 곳에서 엄마 만나 행복하게 살길

ⓒ 이성훈 기자

2010년 3월 26일 오후 9시 20분 경 서해 백령도와 대청도 사이를 순찰하던 1,200톤급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백령도 서남쪽 1마일 해상에서 침몰하는 믿을 수 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침몰 직후 출동한 해안경비정에 의해 전체 승조원 104명 중 58명은 구조됐지만, 나머지 46명은 실종됐다. 사건이 일어난 후부터 유가족들을 비롯한 전 국민은 실종 장병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랐지만 40명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고, 나머지 6명은 끝내 실종된 채로 서해 바다에 잠들었다. 특히 성주 출신 장병인 故 김선명 상병이 천안함 희생자 명단에 포함, 지역민들은 더욱 안타까운 마음으로 조의를 표하며 분향소를 찾기도 했다. 사건 발생 후 두 달이 지난 5월 26일에 故 김 상병의 아버지인 김호엽(선남면, 50)씨를 만나 그동안의 심경과 함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사고 소식을 접했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사고 당일, 그것도 사고가 나기 10∼20분 전까지만 해도 선명이와 막내가 통화하는 것을 들었다. 잠시 외출을 하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속으로 ‘저 녀석은 아버지한테는 별로 연락도 안 하고 동생한테만 연락하네’라고 생각했다. 외출 후 귀가하고 10시 경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초계함 침몰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별 얘기 아니겠지’하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천안함’이라는 말이 들렸을 땐 황당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때부터 가슴이 떨리고, 잠도 안 오고 TV만 계속 봤다. 결국 밤을 새우고, ‘설마, 아니겠지…’란 생각만 하며 평택으로 갔다. 거기서 다른 초계함을 타고 백령도로 들어갔지만 부표를 찾지 못해 타는 가슴으로 2일 동안 왔다갔다만 반복했다.

▲어떤 아들이었나?
-효자였다. 군대에 가기 전에도 회사에 다니면서 동생과 같이 집안 일을 많이 도왔다. 그리고 군대에 있을 때도 휴가 나와서 친구들 만나서 놀기보다는 나를 따라다니며 일을 많이 도왔다. 특히 할머니와 잘 지냈는데 그만큼 할머니가 받으신 충격이 크다. “선명이가 못된 아이였으면 빨리 잊기라도 할 텐데, 너무 착하고 예뻐서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는 말을 자주 하신다.

▲언제 가장 생각이 많이 나는지?
-매일 매일… 특히 선명이의 방에 들어가서 옷이나 유품을 보면 더욱 많이 생각난다. 선명이가 장손이라 그런지 할머니가 너무 그리워하신다. 나도 생각이 날 때는 눈물도 나고 그러지만 어머니 앞에서는 차마 나까지 눈물을 흘릴 수 없다. 남자이고 아버지이기 때문에 참으며 지내고 있다. 선명이에게 남동생과 여동생 이렇게 두 명의 동생이 있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게 그 녀석들도 많이 힘들고, 괴로울 텐데 오히려 아빠를 걱정해 주고 있는 편이다.
ⓒ 이성훈 기자

▲군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한마음 한뜻으로 걱정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많은 힘과 격려를 보내 주신 점에 대해서 너무나도 감사 드린다. 어제(25일)는 군수님을 직접 찾아뵙고 그동안 너무 고마웠다고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면장과 농협장도 직접 찾아가 인사의 말씀을 드렸다. 아무튼 정부에서도 많은 배려와 지원을 해 준 것에 고맙게 생각하고, 특히 마치 내 일처럼 나서며 옆에서 큰 힘을 준 양지회와 61회 회원들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나라를 지키는 장병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해 주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 신분이 군인인 만큼 위험한 일도 많을 것이고, 힘든 일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본연의 업무에 충실해야 할 것이며, 이 일을 계기로 좀 더 강력하게 정신무장을 해야 될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해진 기간 동안 나라를 위해서 열심히 국방의 의무를 다 하고, 몸 건강히 전역해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앞으로의 계획은?
-이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마냥 선명이만 생각하고, 슬픔에 잠겨 가만히 있으면 이 상황을 헤어나지를 못 할 것 같다. 다시 일하면서 열심히 살아야 된다. 아마 선명이도 하늘나라에서 가족들이 더욱 열심히, 더욱 잘 살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비록 고인이 됐지만 아들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은?
-해군에 지원했을 당시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근예비역 소집통지서가 왔었다. 솔직히 그 당시 해군 말고 상근예비역으로 가길 기대했지만, 선명이는 통지서를 찢어버리고 그렇게 가고 싶다던 해군으로 입대를 했다. 남들은 편하게 군생활을 하려고 하는데 나는 이런 내 아들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그리고 낳아준 부모들도 한 날 한 시에 같이 죽지는 못한다. 진짜 영혼이 있다면 같은 시간, 같은 곳에서 같이 간 전우들과 함께 더 이상의 고통과 아픔이 없는 곳에서 편안히 지내길 바라며, 평소에 그토록 그리워하던 엄마를 만나 행복하게 지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평소에 해 주지 못했던 말인데… 자랑스러운 내 아들 선명아, 사랑한다.
ⓒ 이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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