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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사회종합

성주교육정책 15년, 문제점과 그 대안은

이성훈 기자 입력 2010.08.18 10:13 수정 2010.08.18 10:29

인구감소 해결 위한 교육지원정책 태동

↑↑ 1960년대 성주고 전경(좌)과 2010년 현재 모습.
ⓒ 성주신문

인구감소 해결 위한 교육지원정책 태동

글 싣는 순서
■ 인구감소 해결 위한 교육지원정책 태동
□ 공교육 중심 지원의 공과 실
□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교육지원정책 분석
□ 명문고 육성정책에 따른 문제점
□ 교육지원의 선순환 구조로 문제 해결해야

흔히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한다. 그 어느 분야보다 교육에 대한 관심은 날이 갈수록 더욱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며, 범국가적 차원에서 평생 풀어나가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성주군은 민선시대가 되면서 그동안 고질적으로 진행되던 인구감소문제의 해결책으로 15년 전 성주군교육발전위원회를 태동시킨 후 민간중심에서 자치단체중심으로 교육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해 왔다.

그 성과로 우수한 남자 인문계고등학교를 육성해내고 중학교와 초등학교에까지 지원을 확대하면서 인구감소 문제가 다소 해결되고 지역의 교육발전이 완성되는 듯 했다.

하지만 고등학교가 명문화되면서 대도시학생들이 역이주를 하면서 지역학생은 또다시 갈 곳이 없어 성적하위자가 이제는 타 지역으로 전출해야 되는 문제도 우려되고 있다.

성주고등학교의 명문화 사업은 교장공모 추진과 우수 졸업생 멘토사업으로 지속돼야 하지만 중하위권 성적자를 위한 대안사업도 시급히 수립돼야 할 시점이다.

따라서 새로운 문제로 대두된 저학력학생들의 역유출 문제를 지역민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해결한 거창군의 사례를 분석하고 인근지역의 타 군과 교육문제를 전담하는 타 지자체의 사례분석을 통해 그 해결방안을 제시하면서 최근 전문계 특별전형이 제2의 명문고를 만들고자하는 농촌 성주지역의 교육문제 해결의 또 다른 대안이 되는지를 함께 고민해 본다.【편집자주】

교육평준화 정책으로 인한 꾸준한 인구감소
지역민, 지역교육 위해 교육발전위원회 설립
시골의 남자 고등학교 성주고, ‘명문고’도약

◇ 인구감소의 주된 원인은 교육문제
1974년 성주군의 인구는 10만3천여명이었다. 그 다음해인 1975년에는 10만명에 못 미치는 9만9천981명을 나타냈으며, 1980년 7만7천여명, 1990년 5만3천여명, 2000년 5만1천여명, 2010년(6월말 기준)에는 4만5천여명을 나타냄으로써 꾸준히 인구가 감소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도표1】
↑↑ <도표1>연도별 인구현황
ⓒ 성주신문


이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인구가 감소되는 것은 갈수록 낮아지는 출산율을 비롯한 자연감소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작용하겠지만 가장 큰 이유를 꼽자면 교육문제를 들 수 있다.

고등학교 교육여건의 평준화와 과열과외를 해소하기 위해 도입된 교육평준화 정책은 1974년 서울과 부산을 시작으로 1975년에는 대구, 인천, 광주로 그 시행범위가 넓어졌다.

이로 인해 중학교 입학시험이 폐지되고, 평준화 지역 내의 학생만 상위학교로의 진학이 허용되면서 성주의 우수 중학생은 대구의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말았다.

결국 교육평준화 정책을 실시함에 있어 ‘뜨거운 교육열’을 보이는 성주 관내 학부모들이 평준화 지역인 대구로의 진학기회가 원천 봉쇄됨에 따라 자녀를 대구의 중·고등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초등학교 졸업 전에 전 가족이 이주를 하는 방법을 택하게 됐다.

이때부터 지역 학부모의 직장은 성주에, 실제 주거지는 대구에 둔 이중적 생활이 시작됐다. 또한 초기에는 교육에 관심이 많던 공무원들마저 생활의 편리성과 문화적 혜택이 풍부한 대도시로 전 가족이 이주하기 시작했으며, 자영업자 및 어느 정도의 경제력을 갖춘 농민의 순으로 도시이주가 진행됐다.

설상가상으로 지역에 남아있는 학생은 대구로 전학도 가지 못하는 소위 ‘나머지’로 인식, 대도시로 전학가지 못해 능력 없는 학부모가 되기 싫어 급기야 ‘묻지마’식의 이주로까지 이어졌다.

더 나은 교육여건을 만들기 위해 실시된 교육평준화 정책이 대도시 인근 지방자치단체의 인구감소를 초래했고, 결국 교육문제의 근본적인 해결 없이는 인구감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 지역교육 위한 지원정책 태동

지역 내 진학할 만한 마땅한 고등학교가 없으며, 민선 자치시대가 개막되는 시기에 맞춰 민선단체장이 지역교육을 책임지고 문제점을 해결해 달라는 요구를 담아 1995년 6월 성주군 어머니회 연합회가 중심이 돼 성밖숲 일원에서 학부모 궐기대회가 일어났다. 당시의 학부모 궐기는 전국적으로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지역방송을 비롯해 중앙방송에서도 보도, 자치단체가 교육문제에 직접 관여하는 시발점이 됐다.

이로 인해 학부모의 여론을 수렴하고, 지역교육 발전을 위해 민선 1기 출범 직후 전국 최초로 교육발전위원회(이하 교발위)가 설립됐다. 당시 교발위는 순수 민간단체로서 위원장과 5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교육발전, 나아가 지역발전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또한 지역의 문제는 지역에서 해결하자는 취지에 따라 지역민이 ‘참외 한 상자 모으기 운동’을 벌임으로써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교육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하지만 지원금의 한계에 부딪쳐 1997년 단체장이 당연직 이사장이 되는 사단법인 성주군 교육발전위원회란 명칭의 법인단체로 변경하고, 정관도 수정을 거치게 됐다. 기업이 기금을 출연하기 위해서는 손비인정이 돼야 하는데 법인화가 되지 않으면 기금출연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지자체가 기금을 출연하기 위해서도 법인으로의 전환은 필수였다.

그리하여 이때부터 교발위 정관에 따라 단체장 중심의 위원회가 운영됐으며, 민선 1기 김건영 군수는 교발위의 기금출연을 위해 관련법을 검토, 어렵게 군 기금 1억원을 출연했다.

지금은 자치단체가 교육발전기금을 출연하는 것이 당연할 뿐만 아니라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당시 교육행정과 일반행정이 확연히 구분돼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지침 상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성주군은 단체장과 공무원, 교발위, 지역민이 한마음으로 노력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다.

또한 사단법인으로 새롭게 출발한 교발위는 군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성금모금운동을 비롯해 출향 기업인의 거액 기부 등 교육발전의 밑거름이 되는 재원을 급속도로 모금함으로써 실질적인 장학사업과 고등학교 지원 등의 업무를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표1】
↑↑ <표1>교발위 기금 고액 기탁자
ⓒ 성주신문


◇ 성주고등학교, 명문고로 도약하다

교발위는 예산 대비 효율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원칙을 정했다. 우선 선택과 집중을 통한 지원이다.

수 차례의 회의 결과 나온 결론이 대구로 전학 가는 이유가 마땅히 진학할 남자 인문계고등학교가 없다는 것인 만큼 남자 인문계고등학교에 모든 역량을 집중키로 결정했다. 이에 교발위는 집중지원의 대상으로 사립 성주고등학교를 선택했다. 당시 성주고는 학부모로부터 외면당한 상태였으며, 중학교 상위권에 있는 학생이 인근 시군인 김천고, 구미고, 청도 이서고 등으로 진학하고 있었다.

이에 군과 교발위는 학부모의 인식이 바뀔 때까지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 성과가 있을 때까지 집중지원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이때부터 교발위는 방침에 따라 성주고에 입학하는 상위 60명의 학생에게 6개월·1년·3년간 장학금으로 6천5백만원을 지급했다. 또한 명문고 육성을 위해 우수학생 유치는 필수였으므로 처음 몇 년간은 군수와 교발위 위원들이 나서 학생들의 집을 직접 방문해 설득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총동창회와 연계를 통해 성주고 입학 후 서울대, 연·고대 및 의대, 한의대에 진학하는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이 외에도 학력경시대회 실시, 학부모 교사 간담회, 선수학습 지원, 특별보충수업 지원 등 다양한 지원으로 명문고 육성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학부모의 인식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2001년과 2003년 사이 상위권학생의 성주고 입학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또한 도승회 전 도교육감의 도움으로 성주고와 성주농공고가 통합됐다. 많은 예산을 지원 받아 학교를 신축하고, 교육부 시범학교를 통한 우수교사 확보라는 인센티브까지 받았다. 이로 인해 경북에서 뛰어난 교사가 성주고에 모여있다는 소문이 났으며, 학부모의 인식이 한 번에 바뀌는 계기가 됐다.

이후 2005년 도지사 추천 가톨릭의대 6년 장학생 선발, 2006년 32년만에 첫 서울대 합격생 배출, 2007년 서울대 2년 연속 입학, 2008년 도교육청 지정 우수고 육성 자율학교 선정 등 괄목할 만한 성과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제는 최첨단 기숙시설을 갖추고, 질 높은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성주고에 입학하기 위해 전국에서 많은 학생이 모여들고 있다. 10여년 동안 군, 교발위, 학교, 지역민이 힘을 합쳐 노력한 결과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명문고’의 반열에 올라선 것이다.

결국 한 학교를 집중적으로 지원한 결과 교육문제로 지역을 빠져나간 지역민이 다시금 돌아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나아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좀 더 박차를 가해 ‘제2의 성주고’를 육성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져야 할 시점이다.

시골의 열악한 남자 고등학교로 치부되던 성주고가 명문고가 되는 데 10여년의 시간이 걸렸다. 앞으로 10년이 걸릴 지 20년이 걸릴 지는 모르지만 인구 감소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지속적으로 지역교육여건을 개선하다보면 다시금 인구 10만명의 성주군이 되는 장밋빛 미래를 기대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취재 2팀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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