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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우리 지역 집성촌을 찾아서 '광평이씨'

홍하은 기자 입력 2016.10.12 14:23 수정 2016.10.12 02:23

월항 암포서원 복원 완료
문중 유대감 강화 다짐

1회 집성촌을 찾아서- 광평이씨
2회 집성촌을 찾아서- 괴산피씨
3회 집성촌을 찾아서- 동래정씨
4회 집성촌을 찾아서- 신안주씨
5회 집성촌을 찾아서- 영천최씨
6회 집성촌을 찾아서- 안동권씨
7회 집성촌을 찾아서- 밀양박씨

↑↑ 성산광평이씨 종친회는 지난 5월 함안공원에서 제59회 성산광평이씨 전국종친회를 개최했다.
ⓒ 성주신문
 본관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남아있는 제도로 조상들이 살던 지방을 일컫는 것으로 '원적(原籍)'이라고도 한다.
 본관은 조상의 거주지인 지명과 공간의 연속성을 나타내고, 성씨(姓氏)는 부계의 혈통과 시간의 연속성을 나타낸다.
 성주군은 '관향의 고장'이라고도 불릴만큼 많은 성씨들이 성주를 기반으로 집성촌을 형성해 공동체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에 성주를 본으로 하는 성산광평이씨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제1회에서는 광평이씨의 기원 및 유래, 시조, 대표 인물 및 후손 등 각 문중 제반사항 전반에 대해 심도 있게 파악해본다. 나아가 각 문중 및 지역민들에게 충효사상 및 주인정신 등을 함양시키고자 한다.

 
성산광평이씨는 후손들이 성산 또는 광평을 관향으로 하는 성씨이다. 성산이나 광평 모두 고려때 성주군의 옛 지명을 뜻한다.
 
성산광평이씨의 시조는 이무재로 서기 1200년경 고려 21대 희종때 성주군에 토착 세거한 사족(士族)이며, 고려 말 사재동정을 지냈다.
 
그의 아들 이영은 경산부사를 역임했으며 손자 이두문은 판추밀원사를 지냈다.
 
그의 증손 이능은 충혜왕의 복위 공신이며, 당시 원의 지나친 내정간섭과 동녀공납을 철회하는 등 탁월한 외교로 국태민안을 이룬 공로를 인정받아 능(能)이라 사명 받았다. 또한 광평군에 봉해졌으며 그 이름을 종각에 새기고 그 공덕을 기려 후손들이 본관을 광평(지금의 성주)으로 이어오고 경현사의 주벽으로 제향하고 있다.
 
본래 성주에는 여섯 가문의 이씨가 세거하면서 조선 정조 이전까지는 모두 본관을 성주로 사용했으나 그 후 성주, 광평, 성산, 경산, 벽진, 가리로 본관을 달리했다. 그러나 후손의 일부는 성산 또는 광평으로 관향을 쓰고 있어 현재 성산광평이씨라 칭하고 있다.
 
성산광평이씨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시조인 이무재와 이능, 이호성 등이 있다.
 
이무재는 앞서 말했듯이 고려 초기 문신으로 벼슬이 사재감의 동정을 지냈다. 사재감이란 고려때 하천 교통관리 및 궁중의 식료품 어산물 땔감의 조달을 담당하는 관청을 일컫는다.
 
이능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성산이었으나 조선 영조때 관향을 성산광평으로 했다.
 
고려 후기 원나라의 내정간섭이 심했을 당시 동녀공납을 철회하는 등 외교적인 훈업으로 이름을 능(能)으로 사명받고 성주군 월항면 안포리 덤개 마을에 봉작식읍지를 받았다. 이능은 낙향한 후 서당을 지어 후진양성에 힘썼다고 전해진다. 현재 이능의 묘가 성주군 월항면 안포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호성(1395~1468)은 세종 9년(1472년)에 무과에 급제해 거제현령에 부임한 후 읍을 옮기고 성을 새로 쌓아 백성을 편안하게 하며, 왜구를 물리치는 등 위민치안과 청백리 명관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이호성은 능력을 인정받아 벼슬이 동지중추원사에 이르렀다. 현재 묘소는 김천에 있으며 덕산서원, 황곡서원 등에 배향됐다.
 
성산광평이씨의 주요파로는 △종사랑파 △충순위파 △직장공파 △한은공파 △첨정공파 △부사직파 △정랑공파 △선교랑파 △병사공파 △황곡공파 △검계공파 △충순당파 △학성공파 등이다.
 
통계청에 의하면 성산광평이씨는 지난 2000년 기준 총1만3천758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후손의 85%가 경남지방에 토착 세거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최초의 고향인 성주군 월항면 안포리와 대가, 수륜 등지에서 세거했으나 이조 초기에 정변으로 여러 곳으로 산거해 경남지방에 정착해 세거하고 있다.
 
이에 현재 함안, 고성, 창원, 창녕, 김천, 영동, 상주, 김해, 거창, 진해, 거제 등지에 입향·토착해 세거하고 있다.
 
고령군 다산면 노곡리에 성산광평이씨의 집성촌인 논실마을이 광평이씨 집성촌으로 유명하다. 이 마을은 본래 성주군 벌지면의 지역으로 논이 많아 논실 노곡이라 불렀는데, 고종 10년(1906년)에 고령군에 편입됐다.
 
이규엽 성산광평이씨 대종회장은 "노곡리 집성촌은 정락공파 후손들이 선조들의 정신을 기리며 함께 모여 살고 있으며 그 외 대부분의 후손들은 경남지방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처음 삶의 터전이었던 월항 안포리에 선조의 문화유적이 있으나 세월 속에 멸실 퇴락됨을 후손들이 아쉬워 해 서원복원 등 성역화사업을 대종회서 결의했다"며 "이에 14년 동안 추진해 지난해 5월 암포서원 종중 낙성고유 봉안제 행사를 개최했다"고 말했다.
 
주요 문화재로는 이호성 선생의 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동산정과 이령 장군을 모신 충순당(경남도문화재자료 제530호), 이령 이병장의 충의를 찬양하기 위해 세운 정려각(경남도문화재자료 제531호) 등이 있다.
 
이 회장은 "문중의 전통 문화와 역사가 있고 훌륭한 선조들이 있다"며 "이에 후손들은 선조들의 성신과 학문을 이어받아 충효를 숭상하고 애족의 얼을 새기고 추원보본을 실천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뿌리를 확인해 문중 공동체 유대감과 질서를 확립해 지역유림의 유교문화 실천에도 적극 참여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취재2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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