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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 필 동 수필가 |
ⓒ 성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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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인 일인가? 이 뜻하지 않은 부음이라니! 인생 100세 시대라며 모두 저리도 삶의 구가로 여념도 없이 부산스러운데, 아직도 여정은 길고도 먼데 도대체 이게 웬 날벼락이오.
혈족이기 전에 친구이고 유년 시절도 함께 보냈는데, 그 의미가 이리도 크더란 말인가. 그 어렵던 시절 추억의 고령농고를 자전거는커녕 도보로 다녔던 일이 잊을 수가 없어 먼저 떠오름을 어쩌지 못하겠네.
그후 각각 다른 길을 걸었고 가산(嘉山)은 공무원이 되었지. 전근, 영전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반가웠고, 고위직이 됐다고 들었을 땐 그 기쁨이 갑절이었던 것이오.
이제는 인생길의 완숙기에 들어 아름다운 생을 향유할 줄 알았는데, 이 무슨 청천의 벽력이듯 상배(喪配)라니, 반려를 멀리 떠나보낸 그 허허로움을,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텅 비었을 흉중을 내 뭐라 위로의 변을 토해내기가 막막하오.
지금은 자정이 가까운 이슥한 밤이오. 이 밤을 어떻게 보내는지 오늘은 유독 그게 몹시도 궁금하오. 고인과 함께 인생사 희로애락을 같은 길을 걸었던, 그 많고 많은 애환이 있었던 지난날을 기쁜 맘으로 회고나 하는지, 아니면 고분이가(鼓盆而歌)로 혼몽(昏 )이나 않는지 그 또한 몹시도 안타깝고 걱정스러운 밤이오.
그런 많고 많았던, 굽이굽이 펼쳤던 애환들을 어찌 쉬 잊을 수가 있을 것이며, 아직도 고인의 체취가 고스란히 남았을 손때 묻은 가구며, 생활공간이며, 고이 간직했던 애장품이며, 아스라이 들려오는 육성인들 왜 없겠는가. 이 모두를 잊어야 하고 인고의 세월과 부딪혀야 함이니 이를 어쩌랴! 연리지가 부창부수의 표상이거늘 그 한 쪽을 잃어버린 연리지가 어찌 버티기나 하려오.
가산! 흔하게 쓰는 말 一生一死라 하니 이 또한 가산에게도 언젠가는 올 일이라는, 내 감히 해보는 필설이오만 위로의 말을 쉽게 찾을 수 없어 쓴 말이니 양지하오.
점점 깊어가는 이 밤에 흉사를 당한 가산이 불현듯 떠올라 무딘 붓이나마 소회를 적는 것이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위로가 될지 모르지만, 모든 비감을 잊고 편히 잠이나 청하라고 권유하며 상배의 위로로 대신할까 하오. 하나 남은 연리지의 즐거운 삶이 되길 바라며 이만 줄이려 하오. 살아가는 틈틈이 잊힐 날이 있을 것이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