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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사회종합

신라의 해오라기

이채근 기자 입력 2007.04.22 17:18 수정 0000.00.0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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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해오라기
ⓒ 경주신문사



한 순 희
수필가

하늘이 비취 같고 따스한 햇빛이 입김처럼 서리는 경주.
토함산 위로 떠오르는 동해의 아침햇살로 신라의 정기를 비축하니 과거와 현재 미래가 열린다. 아득한 세월 저 편으로부터 날아든 신라의 미소. 물 오른 청산과 잘 정돈된 황룡 들판으로 훨훨 날개짓하며 살아가는 신라사람들

허공에 펄럭이는 해오라기가 내 시선을 잡는다.
하늘을 쳐다보며 찰랑이는 안압지의 연못에 앉아 꽃과 연잎에 입맞춤한다. 해중선산의 꽃나무와 진기한 새 그리고 충성스러운 신하들은 다들 어디로 갔는가. 어디서 어떻게 만나야 한다는 약속이 없는 연못의 곡선은 세월의 무상함을 반추하는 듯 구름만 안고 있다. 세월의 무게만큼 깊어진 연못이다. 울려 퍼지던 풍악소리와 천년의 영화는 가고 없지만 삶은 물처럼 흘러만 간다. 빛바랜 기와 그리고 오랜 풍화로 푸석거리는 돌덩이 하나까지 오랜 길을 만들어 낸다. 작은 물살 같이 일렁이는 가슴을 안고 흘러 보낸 꿈을 찾아 나서는 해오라기의 날개 짓이 수평의 점으로 이어가고 있다.

죽은 사람이 남긴 유물을 산 사람이 즐기며 살도록 배려한 박물관 전시실에는 오랜 세월이 지나도 아름다음을 갖춘 골동품들이 잘 보관되어 있다. 구르는 돌 바위 하나에도 꺼지지 않은 혼불을 피워냈던 사람들 고여 있기를 거부하는 시간이 박물관 속에 살아 숨쉬고 있다. 박물관 넓은 뜰에서 바람이 살풀이춤을 추며 해오라기를 그리고 있다. 태어난 순간부터 이어져 내려온 삶의 흔적들 끝이 없는 업이 되어 주위를 맴돈다. 역사의 빛을 멈추지 않고 진정한 생명력으로 이어져 내려온 골동품이지만 새로움으로 내 곁에 다가온다.

백자에 새겨진 조상들의 그림솜씨를 서툰 흉내 내는 신라의 아이들이 흰 구름 한 조각 속에 삼화령 애기부처처럼 미소 짓는다. 저 미소야말로 미래의 번영과 힘의 근원이다.

천년을 두고 울어도 다함이 없는 서러운 목소리 에밀레종. 이전에도 없고 이후에도 없는 오직 하나 에밀레종만이 있을 뿐이라고 했는데 관리목적으로 타종이 중단 된지 오래다.
종소리를 처음으로 들었을 때의 긴장감과 설렘이 오늘 내 가슴에 파장을 만들며 늙으신 부모님을 생각해 보게도 한다. 효가 실종되어 부모님을 버리는 이 시대에 긴 여운을 남기는 신비한 종소리가 몇천년까지 해오라기처럼 나부꼈으면 싶다.

하늘과 땅 숲마저 비취빛으로 물들이는 반월성 고갯마루로 신라의 소녀가 나풀나풀 해오라기를 그리며 손짓한다. 화랑의 기백도 함성도 사라진 성안에 높이 떠 있는 방패연이여 지금도 잃어버린 주인을 찾아 살피고 있는가 한 무리의 아이들이 한가롭게 노니는 화려한 궁터에 앉았다. 어느 곳이든 연결되지 않는 곳이 없는 정적인 부드러움이 가득한 넓은 성 어딘가에 신라의 마지막왕자 마의 태자가 해오라기 되어 다음 천년을 위해 알을 품고 있을 것만 같다.

지난 시대의 유물을 보고 오늘을 생각 해 보게 하는 선인들의 따뜻한 손길 따라 반쯤 열린 무덤 속 조상과 조우할 수 있는 천마총으로 들어갔다.
달려오는 군사들의 외침소리와 말발굽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지치고 피로한 천마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천년의 세월을 일편단심 한 주인만 기다리며 섬기는데 조석으로 바뀌는 나의 알량한 마음만 바람소리를 내며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고 있다.

천년의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가까운 일체감을 맛보기 위하여 고분들 사이로 걸어간다.
대나무 잎을 귀에 꽂은 미추왕이 호방한 웃음을 터뜨리며 해오라기 되어 걸어 나올 것 같다. 구비 구비 징을 박아온 역사나 인생사도 민들레 홀씨처럼 비나 바람으로 날리게 되는 것 죽음이 또 다른 하나의 삶으로 이어주는 고분을 보며 미래를 열어 가는 현재가 보인다.
마을마다 고여 있는 전설 찾아 천년의 미소로 인사하는 엑스포장에는 신라사람들이 하늘과 땅에 백발의 머리를 풀고 해오라기 그리며 사물놀이 한다. 그 옆에는 향료 수저 토기 등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도공들은 가마에 천년의 혼불을 지핀다. 새롭게 태어남을 예감하며 살아있는 전설을 가지고 해오라기는 또 그렇게 날아갈 것이다.

약 력

포항신광출생, 경주문예대학수료.
교단문학수필등단. 한국수필 신인상.
경북문학회원. 경주문협회원 행단문학회원.
저서 : ‘날벼락’ 현 유화전통다원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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