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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사회종합

수양버들 많아‘양월(楊月)’

이채근 기자 입력 2007.04.30 10:08 수정 0000.00.00 00:00

안강찰토마토 주산지,

수양버들 많아‘양월(楊月)’
안강찰토마토 주산지,
집집마다 야생화 만발한 꽃마을

안강읍 양월2리(楊月二里)

ⓒ 경주신문사

4월을 누가 잔인한 계절이라고 노래했던가? 만물이 소생하는 4월은 잎 피고 꽃 피는 참으로 아름다운 축복의 계절인데. 4월의 끝자락에 찾은 마을은 집집마다 야생화 꽃밭을 가꾸어 아름답게 피어나는 형형색색의 꽃들로 4월을 더 아름답게 보내고 있는 창말(양월2리)이다.
이 마을에는 다음과 같은 마을노래가 전해오고 있다.

안강들 넓은들 늘푸른 성 앞에 어련히 속삭이는 성줄의 보금자리
용두못 맑은 물 뒷동산 높은 봉에 밤이면 운동 이름도 빛나리라
창말 꼬마는 안강의 앞이더라. 창말 꼬마는 월성의 앞이더라.

 
ⓒ 경주신문사 

이 노래는 4H운동과 새마을운동이 한창이었던 60년대에 이 마을의 김광수, 박두식, 최영고, 안중남, 이열우, 이천우 등 당시 10대들이 만들어 즐겨 불렀다고 한다. 안강 제일초등학교 교가에 노랫말을 지어 붙여 불렀던 주역들이 지금은 이미 60대가 되어 마을의 역사를 말하고 있었다.

안강 중심 양월, 양월 중심 창말

옛날 이 일대에 수양버들이 많아 ‘양월(楊月)’이라 불렀다는 이 마을은 ‘양월방’, ‘양월뱅이’라고도 한다. 창말의 용두지라는 저수지에 최근까지도 수양버들이 많았는데 20여년 전에 경지정리할 때 모두 없어졌다.
양월은 경주시 안강읍의 소재지로서 안강의 중심이다. 안강읍사무소를 비롯한 주요 기관들이 이곳에 있고, 안강시장과 안강의 중심상가가 이곳에 있다. 남쪽으로는 칠평천을 끼고 근계리와 경계를 이루고, 북쪽은 육통리에 닿아 있다. 동으로는 안강리, 서로는 산대리와 맞닿아 있다.
양월은 안강의 중심이다 보니 인구의 팽창으로 6개리로 나누어져 있다. 구강을 양월1리, 창마을, 새각단, 양월뱅이를 양월2리, 안강파출소 뒤쪽을 양월3리와 4리로 나누고, 장거리를 양월5리, 칠평을 양월6리로 구획되었다.

찰토마토 5만평 10억원

 
ⓒ 경주신문사 

양월2리는 창말이 중심으로 안강읍이 강서면이었을 때 면소재지였다고 한다.
안강찰토마토의 주산지인 이 마을은 5만여 평에서 토마토를 재배하여 연간 10억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 마을은 1974년에 안강찰토마토작목반을 결성해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토마토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데 기여했다. 안강찰토마토는 과육이 단단하여 저장성이 뛰어나고, 당도도 높아 맛이 좋기로 소문났다. 안강찰토마토 집하장이 이 마을에 있다. 1천 평의 부지에 건평 400평의 선과장을 가지고 있다. 그 외에 이 마을에는 벼농사와 젖소 50두, 한우 50두를 기르고 있다.
현재 185가구, 210세대에서 650명의 주민이 생활하고 있으며 최고령자는 마을회관 앞에 살고 있는 올해 96살의 정을하(양월어른)할아버지로 아직 당신의 빨래를 며느리한테 맡기지 않고 직접 할 정도로 건강하시다. 주로 채식을 많이 하시고, 술, 담배는 거의 하지 않고 지금도 운동을 꾸준하게 하시며 건강을 잘 관리하고 계신다.

행복해지는 비결은 꽃

이 마을이 꽃마을로 거듭나는 데에는 이종분(52·전 선다회장)씨의 역할이 크다. 이씨의 야생화와의 인연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는데 그때 옆 병상에 야생화 한 포기가 선물로 들어왔어요. 우연히 그 꽃을 보면서 너무너무 기쁘고 감격했어요.” 이를 계기로 이씨는 집 마당을 꽃밭으로 일구어 각종 야생화를 구해다 심기 시작했다. “꽃을 가꾸면 모든 잡념이 없어지고 너무 행복해요” 그래서 자신이 기르던 꽃을 주위에 나누어 주기 시작해 지금은 이 마을 20여 가구가 야생화를 가꾸고 있고, 김준경 이장을 비롯한 몇몇 주민들은 건물을 헐고 꽃밭을 가꿀 정도로 적극적이다.
꽃이 보급되면서 마을이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을분위기가 깨끗해지고 아름다운 것은 물론, 마을주민들도 정서적으로 많이 안정되고 밝아졌다고 한다.
꽃을 가꾸는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 한다고 한다. 특히 요즘처럼 각종 꽃이 필 시기에는 밤잠을 못 잘 정도로 꽃에 취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마을 분위기가 깨끗하고 밝았다. 안강의 중심이었던 창마을이 이제 꽃마을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신라시대 때 군량창고

ⓒ 경주신문사

창말 신라시대부터 이 마을에 군량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으므로, ‘창리(倉里)’, ‘창마을’이라고 불렀다. 안강이 강서면 일 때부터 이곳이 면소재지였으며 안강의 중심이었다. 이 일대에 수양버들이 많아 양월(楊月)이라고도 불렀으며 양월리의 마을이름도 여기서 유래되었다.
창말은 한 마을을 이룬 단일부락이지만 이를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양월뱅이’와 ‘새각단’이라는 작은 자연부락들도 나눌 수 있지만 다 같은 마을이다.
당목 마을회관에 있는 팽나무(포구나무)로 주민들은 신라시대에 심은 나무로 믿고 있다. 그러나 실제 이 나무는 수령이 4~5백년쯤 될 것으로 추증된다. 당나무 너무 가까이에 마을회관을 지으면서 당나무가 마을회관 건물에 치여 생존에 어려움이 있어 보였다. 특히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나무의 밑둥치를 짓누르고 있어 나무의 생육에 치명적으로 보였다.
동제 80년대까지 매년 정월보름에 지냈으나 지금은 지내지 않는다. 제당도 있었으나 동제를 없앨 당시에 제당도 없앴다고 한다.

3형제 임란창의 의사

성터 창고를 보호하기위해 쌓은 것으로 보이는 토성으로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마을주민들은 이곳을 ‘성줄’이라고 한다. 고목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청와공 부조묘(淸窩公不?廟) 조선시대 숙천도호부사(肅川都護府事)를 지낸 경주인 청와(淸窩) 이경한(李景漢)의 부조묘로 양월리 777번지 경주이씨 종가에 있다. 청와공은 임진왜란 때 형 경해(景海), 아우 경호(景湖)와 함께 창의거병하여 안강 및 경주지역 방어전에 공을 세웠고, 화왕산전투와 화왕산회맹에도 참가했다. 그후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이괄의 난 때에도 공을 세워 진무원종공신에 녹훈되었다. 후에 숭정대부 판중추부사에 추증되어 불천위로 가묘에 봉향되고 있다.
개버들 안강2리와 3리 사이 도로가에 있는 웅덩이로 버드나무가 있어서 ‘개버들’이라고 불렀다. 대추밭각단에서부터 스며나온 물이 늘 고여 있어, 수리시설이 없던 옛날에 농사를 짓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지금은 다 메워지고 없다.
부윤 선정비 마을회관 마당에는 조선시대에 세운 선정비 2기가 서 있어 이 곳이 본래 안강의 중심이었음을 알게 한다. 부윤들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당시 백성들이 세운 것으로 큰 것은 부윤 이명상, 작은 것은 부윤 노영경을 기리는 비이다.
용두지들 옛날에 용이 승천했다는 못으로 그 아래에 있는 들이 용두지들이다.
골안들 창말 서편에 있는 들로 고을 안쪽에 있다고 그렇게 불렀다고한다.
소평들 마을 동편 길 건너편에 있는 들로 옛날에 ‘소평마을’이 있던 곳으로 지금은 마을이 철거하여 양월2리에 합류하고 들이 되었다.

소평마을 철거하여 합류

 
ⓒ 경주신문사 

석지솔밭 소나무가 많았던 숲으로 지금은 나무를 베고 농장을 일구어 놓았다. 창마을 서편에 있다.
반달샘 반달처럼 생긴 샘으로 아무리 가물어도 이곳에는 물이 새어나온다고 한다.
뒷동산 마을 뒤에 있는 작은 동산이다.
원시고개 뒷동산 동쪽편에 있는 산을 말한다.
찬물샘 찬 물이 나오는 샘으로 동네 앞에 있었으나 경지정리로 메우고 지금은 없어졌다.
운동기구 마을회관 2층에는 런닝머신을 비롯한 각종 운동기구들이 즐비했다. 이 기구들은 주민들이 집에서 사용하던 것을 찬조 받아 설치해 놓고 주민들이 이용한다고 한다.

해마다 ‘마을주민대화합잔치’

창말은 60~70년대까지는 빈곤했던 마을이지만 주민들이 열심히 노력하여 80년대 이후부터 토마토, 축산 등으로 부자마을이 되었다는 자랑스러운 마을이다. 또한 안강찰토마토의 주산지이며, 꽃마을이기도 하지만 주민단합이 잘 되고, 젊은 사람들이 마을어른들을 잘 공경하는 경로효친의 마을로도 평가받고 있다.
마을 청년회와 부녀회에서 매년 5월 어버이날에 경로잔치를 열어 마을 어른들을 공경하고 있다. 또한 주민화합을 위해 해마다 ‘마을대화합잔치’를 갖는다. 올해도 3월31일에 관광버스 3대를 대절해 주민 121명이 의성 옥천초등학교에 가서 단합대회를 가졌다고 한다.
이 마을은 특별한 주민숙원사업은 없고 용두지 일대의 농수로 정비사업이 필요하다고 한다.

10여년 불우이웃도와

이 마을에서 칭찬하는 고마운 몇 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이 마을의 김광수(60)씨로 10여년째 해마다 독거노인과 어려운 이웃에게 쌀(80kg) 20가마 가량을 나누어 오고 있다고 한다. 성불사 주지 대각스님(이인권 53)도 마을어른들의 경로잔치를 여는 등 마을 일에 매우 협조적이라고 한다. 마을 출신으로는 이종분(52·전 선다회장), 이덕환(50·경북대 교수), 이병환(46· 순천대 교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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