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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사회종합

향가문학관 개관을 기대하며

이채근 기자 입력 2007.04.30 10:16 수정 0000.00.00 00:00

꽃 봄이 한바탕 홍역을

향가문학관 개관을 기대하며

ⓒ 경주신문사

꽃 봄이 한바탕 홍역을 치루더니 이젠 인공 조림 정원의 영산홍만이 특유의 조그만 입술로 나그네를 유혹한다.

미당 서정주는 영산홍을 ‘소실댁 툇마루에 놓인 놋요강’이라고 노래했다. 요강이 소실댁 툇마루에 놓여 있으면 쥔네 양반 오신지가 오래라는 것이다. 무릇 모든 물건은 제 자리에 놓여 있어야 제 맛인 것인데, 얼마나 양반이 오지 않았으면 방안에서 제 기능을 해야 할 요강이 툇마루에 자리하고 있을까. 여기서 소박한 낱말 풀이를 해봐야 할 것 같다. 요강의 용도를 깊은 밤 뒷간에 가기가 무엇하니까 방안에서 해결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초딩 수준이고, 보름달이 두둥실 뜬 날 참았던 오줌을 힘껏 방사하여 놋요강 특유의 금속음을 방안 가득 울려 퍼지게 하여, 운우의 정을 무르익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고딩 수준을 넘어서는 사람이다. 이처럼 우리네 조상님들은 어떤 물건을 만들어도 한 가지의 효용성에만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복합적인 기능을 함축 하도록 지혜를 짜내었던 것이다. 오늘날 온갖 야동이 판치는 세태 속에서 한번쯤 음미해야 할 것 같아서 주저리 해 본다.
며칠 전 부산 모 대학 교수들과 경주 무장사지를 답사 할 기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향가에 대한 격론이 벌어지게 되었다. 일본의 ‘만엽집’ 얘기를 하면서 ‘삼대목’의 소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했고, 17세기에 완성된 일본, ‘하이쿠’의 생명력에 대해 놀라운 일이라는 데 모두가 공감했다. 뒤이어 우리 향가에 관해 깊은 애정을 보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데 적잖은 놀라움을 피력했다. 일행 중 한 교수의 “경주에 향가와 관련된 단체나 연구원 같은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기자는 매우 당황했다. 우물쭈물 하는 기자를 보고 그 교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서, 천년의 시공을 살아 최고의 상징성을 지닌 주옥같은 서정시인 향가와 관련된 곳이 어떻게 없을 수 있느냐며 항의성 반응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에도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고, 무언가 부끄러운 속내를 들킨 어린애 마냥 어쩔 줄을 몰랐다.

우리나라에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이후 각 지방자치단체는 자기 지방을 알리기에 모든 역량을 쏟아 붇고 있다. 일례로 광주는 주암댐 옆에 있는 식영정, 소쇄원, 한백정 등 송강과 관련된 정자를 문화관광 밸트화 하여 ‘가사문학관’을 대궐처럼 지어놓고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가까이 있는 면앙정과 송강정 등도 함께 둘러보게 아이디어 짜내고 있다. 또한 살아 있는 예술인들의 문학관도 전국 곳곳에 만들어 지고 있다. 어떤 조그만 모티브만 있어도 바로 시행에 들어가는 지방들을 보면, 한마디로 부럽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우리 경주는 어떠한가. 물론 불국사 바로 인접한 곳에 동리·목월 문학관이 개관한지가 바로 얼마 전이다. 그러나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천년 서라벌인들의 심성이 응결된 노래인 향가와 관련된 문학관에 대해서는 아주 인색한 수전노가 되니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최소한 향가가 무엇인지는 안다. 그리고 수많은 대학교의 국문학 관련 학과에서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향가가 불러졌던 현장에 대한 동경을 하게 마련이다. 아니 그 곳을 직접 찾아가서, 그날 울려 퍼졌을 향가를 한번쯤 음미하고 싶을 것이다.

지금 경주는 오랜 멈춤에서 이젠 기지개를 켜고 새 세상으로의 줄달음 칠 준비가 한창이다. 곳곳에 유물 유적 발굴이 벌어지고 있고, 아름다웠던 천년신라의 거리조성에 온 서라벌이 들썩인다. 이와 함께 전통과 현재가 아우러지는 축제도 매우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가히 천년 서라벌 영화를 되살릴 준비에 모두가 동참하여, 숯으로 밥을 짓고 기와로 지붕을 덮었던 헌강왕 시절로 되돌아갈 것 같은 기세다. 매우 고무적인 일로 모든 서라벌인들이 박수를 보낼 일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유물 유적과 더불어 외형에만 치중하여 자칫 사상누각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는 것은 기우일까. 세계 어떤 문명이라도 물질문명과 함께 고도의 정신문명이 어우러져야 오랜 생명력을 지니는 것이다. 2064년(BC57~AD2007)의 역사 기록을 가진 서라벌이 과연 물질문명만이 존재하여 살아남았을까?

이젠 우리 서라벌도 정신문명에 눈길을 돌려야 할 때이다. 민간단체에만 의존하여 향가를 되살리는 것은 분명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체계적인 향가와 관련된 현장을 찾아 그곳에 작은 팻말이라도 세우고, 뒤이어 향가문학관 개관을 향한 주춧돌을 놓아야만 한다. 더 늦기 전에 말이다.

온갖 상념이 황룡사지를 뒤덮은 유채꽃 속으로 들어간다. 하하호호 싱그러운 화랑 원화들의 얼굴에 묻어나는 자신감이 유물 유적에만 머물게 하지 말고, 그 속을 꽉 채울 자랑스러운 천년신라의 노래 향가를 되살려 주는 의무가 우리에게 명확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업무에 바쁜 관의 분발을 촉구해 본다. 아울러 무한한 기대도 함께 학수고대 해 본다.

박 진 환 프리랜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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