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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문화예술을 끌어안고 사는 것이 나의 소명입니다" / 박기열 성주문화원 사무국장

최행좌 기자 입력 2013.10.22 09:20 수정 2013.10.22 09:20

호 '경당(耕堂)'은 '쉬지말고 일하라'는 의미
퇴근 후 밤 10시까지 각 읍면에서 서예지도

ⓒ 성주신문
지난 6일 경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6회 고운서예 전국휘호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해 지역 문화예술의 위상을 드높인 향토서예가가 있다. 30여년 전 서예를 시작해 현재 성주문화원 사묵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경당 박기열 선생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에 지난 18일 박기열 사무국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서예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문화원 국장으로서 지역문화 창달에 기여하고 있는 삶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최초 전국휘호대회 우수상 수상을 축하한다. 소감과 대회 소개를 한다면?
고운선생 전국휘호대회는 올해 6회째로 1차 500여 명의 예선을 거쳐 통과한 280명이 지난 6일 경주실내체육관에서 현장 휘호와 심사를 통해 수상자가 선정됐다. 휘호대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사이에 '우수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많이 기뻤다. 서예를 시작한지 30여 년이 넘었고, 많은 공모전에 입상했지만 휘호대회는 처음이라 더 기분이 좋았다.

■ 서예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서예는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했다. 당시 시골에 서예학원이나 훌륭한 선생님이 없었다. 더군다나 대구로 학원을 다닌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방학 때 학원비가 없어 대구 동성로에 있던 한림서예원에서 청소와 정리를 해 주면서 어깨너머로 조금씩 배웠다.
고등학교 때 군 대표로 화랑문화제 본선에 참가했는데 그곳에서 처음으로 화선지를 접해봤다. 화선지를 나눠주고 먹으로 글씨를 쓰라고 하는데 번져서 글씨를 한자도 못 쓰고 나왔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저려온다.
제대로 된 법첩 한 권도 없고, 지도 선생님도 없는 상황이 물속에서 발만 허우적대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 1985년에 서예원을 열어 2006년까지 1천600여 명이 넘는 후학을 가르친 일은 보람된 일이 아닐 수 없다.

■ 호 '경당'의 뜻은?
심연 노중석 선생님을 만나게 돼 본격적인 서예인으로서의 인생을 살게 됐다. 호는 '쉬지 말고 일하라'는 뜻으로 '耕(밭갈 경)'과 '堂(집 당)'을 주셨다. 국전, 도전에 작품을 출품하려면 많은 노력과 경비가 소요된다. 그때마다 그만둘까하는 마음도 많이 들었지만 그럴 때마다 많은 격려와 용기를 준 도일회 소장님께 이 자리를 통해 감사드린다.
국선에 처음 입선을 했을 때는 얼떨떨한 게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어느 날 초면인 분이 찾아와 축하인사를 하고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느닷없이 인사동 필방에 전화를 걸어 "이곳으로 화선지 1면을 보내라"고 선물하고는 이름도 성도 모르고 "인연이 되면 또 만나겠지요"하면서 떠난 분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 문화원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면서 보람된 일과 힘든 점은?
2006년 문화원 사무국장이 공석이 돼 공채 모집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응시생 11명 속에서 공채로 들어와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당시에는 문화원의 이미지가 좋지 않아 문화사업이 미진한 상태였다. 훌륭하신 배춘석 원장님을 만나 첫 번째로 문화원 위상을 높이는데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일했다. 그 결과 4년 만인 2010년 10월에 대한민국문화원상을 수상하게 됐다.
그동안 문화가 지역 간의 무한 경쟁에 돌입해 문화사업이 엄청나게 일어났다. 지역에서도 제일 먼저 독립원사를 경북에서 두 번째로 준공했으며, 1년에 20여 개가 넘는 각종 행사, 사료조사·발굴, 발간 등 활동하고 있다. 그 결과 대한민국 문화원 종합경영대상 후보까지 오른 것만으로도 너무 큰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앞만 보고 달려온 지 어느덧 8년이 지났다. 직원 둘이서 그렇게 많은 사업을 어떻게 했는지 상상이 안 된다. 이시웅 원장님을 비롯해 함께 열심히 일해 온 이미란 간사에게도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 고향 성주는 어떤 의미인지?
어릴 때 이곳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대학시절, 군대시절을 제외하고는 고향을 떠난 적이 없다. 고향의 문화예술만 끌어안고 살아가고 싶다. 성주는 인근 시군에 비해 문화 콘텐츠 개발할 소재와 지원이 아주 많다. 앞으로도 숨어있고 사장되어 가는 우리 문화를 찾아 부흥시키는데 앞장설 것이다.

■ 인생철학과 좌우명은 무엇인지?
'신독(愼獨)'이라는 말을 가끔 생각한다.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행동의 흐트러짐이 없이 잘하자'란 뜻이다. 생각처럼 늘 실천하기는 어렵지만 항상 마음속으로 잘하려고 노력한다.

■ 평소 여가생활은 어떻게 보내며, 서예 외에 취미와 특기는?
문화원에서 일하면서 나를 잃어버렸다. 오전 9시에 출근하면 오후 7시쯤 퇴근하고 8시부터 10시까지 읍면에서 서예지도를 한다. 농촌에 주경야독하는 분들이 기다리고 있어 보통 10시쯤 일과를 마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내가 배운 서예를 많은 분들이 즐길 수 있도록 전해주는 것이 소명이라 생각한다.

■ 앞으로의 계획은?
문화 수준이 생활수준이라고 한다. 이제 우리도 생활 속에 많은 문화가 물들어가고 있다. 여유롭고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문화예술을 대하는 기본적인 예절이 부족한 것 같다. 작가들은 본인의 심혈을 다 바쳐서 일반인들이 감내하기 어려운 작업을 하면서 지금까지 왔다. 농담으로 "그림 하나, 글씨 하나 주세요" 하는 말은 삼가줬으면 좋겠다. 한 작품 한 작품이 예술인들의 인생이고 재산이다. 아울러 예술인들을 만나면 따뜻한 손 한 번 잡아주고 칭찬해주면 감사하겠다.
많이 부족해 남 앞에 나서기가 부끄럽지만 내 고장 문화예술 발전에 최선을 다하겠다. 오는 10월 31일 (사)한국서예협회 경상북도지회 성주군지부가 결성된다.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한다.

박기열 사무국장 △1960년 초전면 출생 △현 성주문화원 사무국장 △영남대 중퇴, 중국 산동대 서법전공 수료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경북향토사 연구위원, 한국서예협회 경북도 이사, 성주문화관광해설사, 경북서예대전 초대작가 등 활동 △경북도지사 표창, 대한민국서예대전 입선, 정수서예대전, 한중서예교류전 등 다수 수상 △아내 조현미 씨와 1남 1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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