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 희 국 대구경북서예협회 사무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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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환은 대구와 무주를 잇는 도로, 소위 "무주선"이라 불리는 지방도 개설을 위해 15년을 뛰어다녔다. 처음엔 단순히 후리실 마을 신작로를 닦고자 주민들의 바람을 모아 시작된 일이었다. 척박한 고향 땅에도 번영의 길이 열리기를, 아이들이 먼 길을 헤매지 않고 학교에 다니기를, 이웃들의 물건이 시장까지 손쉽게 나가기를 모두가 꿈꿨다. 덕환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이 도로가 생기면 금수면도 사람 사는 동네가 될 수 있습니다."
그는 마을 주민들의 앞에서 항상 이렇게 말했다. 때로는 읍소하고, 때로는 설득하며, 그는 중앙 정부와 지방 관청을 수없이 오갔다.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토 개발에 힘이 실리자 덕환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박경원 경북도지사와 조재천 장관을 찾아가 도로 개설의 필요성을 수없이 피력했고, 지역 유지들과 공무원들까지 설득하며 마침내 지방도 인가 승인을 받았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마을 사람들은 환호했다.
"드디어 우리 고향에도 길이 열리는구먼!"
"덕환이, 정말 고맙네!"
사람들은 기쁜 마음으로 그의 손을 잡고 연신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덕환은 이를 마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말했다.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다 같이 힘을 모아 도로 공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도록 합시다!"
· 겹경사의 소식
마을에 희망의 서광이 비치던 그해 가을, 덕환의 집에도 기쁨이 찾아왔다. 그의 아내, 본동댁이 다섯째 아이를 낳은 것이다. 덕환은 환한 얼굴로 이웃의 군수어른을 찾아가 말했다.
"군수님, 우리 집에 아들이 하나 더 태어났습니다. 이름을 함께 지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배군수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나라를 기쁘게 할 재목이 될 아이구만. 돌림자를 넣어 '희국(喜國)'이라 하는 게 어떻겠나?"
그리하여 막내아들은 '희국'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덕환은 세 살 터울로 세 아들과 두 딸을 둔 가장으로서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웠지만, 희망에 차 있었다. 아이들의 밝은 웃음을 보며 그는 자신이 가는 길이 옳다고 믿었다.
· 정치적 서광
그해 연말, 또 다른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덕환이 존경하던 조재천 장관이 제6대 총선에서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것이다. 군사정권의 도래로 공직에서 물러나야 했던 조 장관이 다시 정계로 복귀한 것은 덕환에게 큰 힘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평소 덕환의 활동에 호의적이었던 송한철 후보가 성주 지역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덕환은 이제 지역 발전의 큰 물꼬가 트였다고 느꼈다.
"조 선생님, 이제 우리 지역도 발전할 차례입니다. 함께 힘을 모아 봅시다."
송 의원의 손을 잡은 덕환은 결의를 다졌다.
· 새로운 시작
도로 개설 승인의 기쁨과 함께 찾아온 개인적, 정치적 겹경사는 덕환에게 더 큰 책임감을 안겨 주었다.
사람들은 이제 희망에 차 있었다.
"덕환씨 덕분에 우리 동네에도 번영의 길이 열릴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덕환은 그들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겠다고 다짐했다. 고향에 서광이 비치기 시작한 것은 분명했다. 이제 그 빛을 더욱 널리 퍼뜨리는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