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사설 칼럼

탄소는 줄이고, 복지는 채우는 교통정책 펼쳐야 - 오용석

이수영 기자 입력 2026.06.23 09:36 수정 2026.06.23 09:36

 

↑↑ 오 용 석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
ⓒ 성주신문

 

"아이들에게 좋은 도시는 모두에게 좋은 도시입니다."

아동 놀이와 이동성 분야의 연구자 팀 길의 말이다. 단순하지만, 도시와 교통정책의 방향을 이보다 더 정확하게 말하기도 어렵다. 아이가 혼자 걸어서 학교에 갈 수 있는 도시라면, 노인도 병원에 가기 쉽다. 유아차를 미는 양육자가 안전하게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는 거리라면, 휠체어 이용자와 보행이 불편한 시민도 이동할 수 있다. 학교 앞 공기가 깨끗하고 조용한 동네라면, 그곳에 사는 모든 주민의 삶도 나아진다.

그런데 최근 한국의 교통정책 논의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듯하다. 경찰은 24시간 시속 30km로 제한된 어린이보호구역, 이른바 스쿨존의 속도 제한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어린이가 적은 심야시간이나 공휴일에는 제한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취지다. 경찰청이 관련 연구용역을 발주했고, 정부의 '국가정상화 총괄 태스크포스'도 속도 제한 개선에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물론 모든 스쿨존을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운영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의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가 던져야 할 질문은 "스쿨존을 얼마나 풀 것인가"가 아니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걷고, 시민들이 차 없이도 살 수 있는 도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여야 한다. 스쿨존을 규제 완화의 대상으로만 보는 순간, 도시는 다시 자동차의 속도와 편의를 중심으로 설계된다.

유럽의 흐름은 다르다. 클린 시티즈(Clean Cities)의 2025년 보고서 『Streets for Kids, Cities for All』은 유럽 36개 도시의 아동친화적 도시 이동성을 평가하면

서 세 가지 지표를 제시한다. 첫째, 학교 앞 차량 통행을 제한하는 스쿨스트리트(School Street). 둘째, 도시 안에서 시속 30km 이하의 안전속도 적용. 셋째, 물리적으로 보호된 자전거 인프라다. 보고서는 이 세 가지가 아이들의 안전뿐 아니라 대기질, 소음, 신체활동, 독립적 이동, 도시의 삶의 질과 직접 연결된다고 설명한다.

결과도 흥미롭다. 파리는 아동친화 이동성 평가에서 유럽 36개 도시 중 1위를 차지했다. 파리는 2021년 도시 전역에 일반적인 30km/h 제한속도를 도입했고, 스쿨스트리트와 자전거 인프라를 빠르게 확대했다. 런던은 10년도 안 되는 기간에 500개가 넘는 스쿨스트리트를 만들며 학교 앞 거리 전환을 이끌었다. 보고서는 파리, 브뤼셀, 런던 같은 도시들이 불과 10년 사이에 빠르게 변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핵심 요인으로 지방정부의 정치적 리더십을 꼽는다.

스쿨스트리트는 단순한 교통안전 정책이 아니다. 등하교 시간에 학교 앞 도로의 차량 통행을 제한하거나, 아예 보행자 중심 공간으로 바꾸는 정책이다. 아이들은 더 안전하게 걷고, 부모들은 덜 불안해하며, 학교 주변의 공기와 소음 환경도 개선된다. 파리는 이미 218개의 스쿨스트리트를 만들었다. 파리 시민 81%가 스쿨스트리트에 긍정적 의견을 보였고, 주로 자동차로 이동하는 시민 중에서도 75%가 지지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이 대목은 한국의 지방선거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교통정책은 도로를 얼마나 더 만들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의 이동을 우선할 것인가의 문제다. 지금까지 지방선거의 교통공약은 대체로 도로망과 철도망, 대형 개발사업 중심이었다. 그러나 시민들이 실제로 요구하는 것은 조금 다르다. 기후정치바람의 기후인식조사는 시민들이 교통부문 기후정책의 핵심을 어디에서 찾고 있는지 보여준다. 응답자의 33.7%가 탄소배출 감축을 위한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대중교통 활성화'를 선택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대전·충청권에서 이 문제는 더 절실하다. 대전은 광역도시이지만 여전히 버스 노선과 배차, 환승 편의에 대한 불만이 크고, 충남과 충북의 중소도시와 농어촌에서는 버스가 하루 몇 번 오지 않아 병원과 시장에 가는 일조차 하루 일과가 된다. 이런 지역에서 교통은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다. 건강권이고 교육권이며 복지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지방선거의 교통공약은 "탄소는 줄이고, 복지는 채우는" 방향으로 다시 짜여야 한다. 첫째, 스쿨존 완화가 아니라 스쿨스트리트와 생활도로 제한속도 30km/h 확대를 약속해야 한다. 학교 앞과 어린이집, 도서관, 돌봄시설 주변부터 등하교 시간 차량 통행을 제한하고, 보행로를 넓히고, 그늘과 쉼터를 만들고, 자전거와 유아차, 휠체어가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대중교통 노선과 차량을 늘리고 기후패스를 결합해야 한다. 요금만 낮춘다고 승용차 의존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버스가 자주 오고, 환승이 편리하고, 밤늦게도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을버스와 시내버스를 병원, 시장, 학교, 복지관, 역과 연결하는 생활권 순환망으로 다시 짜야 한다. 마을버스·기후패스를 중심으로 생활권 공공교통을 촘촘하게 재구성하고, 보행 중심 거리 전환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

셋째, 중소도시와 농어촌에는 수요응답형 교통, 마을택시, 공공버스, 무상교통을 결합해야 한다. 버스가 하루 몇 대 없는 곳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라"는 말은 공허하다. 먼저 탈 수 있는 교통을 만들어야 한다. 교통취약지역의 어르신, 청소년, 장애인, 차 없는 가구가 학교와 병원, 시장과 공공시설에 갈 수 있도록 정부가 책임지는 공공교통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스쿨스트리트와 30km/h 도시, 대중교통 확대와 기후패스는 서로 다른 정책처럼 보이지만 사실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도시를 자동차가 빠르게 지나가는 공간으로 둘 것인가, 아니면 사람이 안전하게 머무르고 이동하는 공간으로 바꿀 것인가. 우리는 이번 지방선거 후보자들에게 물어야 한다. 스쿨존을 완화할 것인가, 스쿨스트리트를 만들 것인가? 도로를 더 넓힐 것인가, 아이들의 길을 더 넓힐 것인가? 전기차 보조금만 말할 것인가, 차 없이도 살 수 있는 공공교통을 말할 것인가? 좋은 도시는 아이들이 혼자 걸어 학교에 갈 수 있는 도시, 차가 없어도 병원과 시장, 일터와 학교에 갈 수 있는 지역이다. 기후위기 시대의 교통정책은 바로 그 길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스쿨존 완화가 아니라, 도시의 속도와 방향을 바꾸는 지방선거 공약이다. 버스가 자주 오고 교통비가 낮아지면 차 없는 시민의 삶의 반경이 넓어진다. 탄소는 줄고, 복지는 채워진다.



저작권자 성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