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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 옥 연 △대구 달서구 월성동 출생(65세) △월배초·달성중·대구제일여상·한국방통대 법학과 졸업, 대구대 평생교육원 사회복지학과 수료 △남편과 1남1녀 △前왜관지역아동센터 아동복지교사, 前성주군지역사회보장협의체 아동분과장, 경북지역아동센터협의회 정책국장 △성주군수상(아동복지유공), 경북도지사상(우수종사자),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배분평가 우수기관 종사자, 경북도의장상(우수종사자) 등 |
| ⓒ 성주신문 |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오랜 시간 아이들과 함께하며 아동복지를 실천해온 성주지역아동센터의 박옥연 센터장을 만났다. 19년 동안 한길을 걸어온 박 센터장을 통해 돌봄의 가치와 현장에서 느낀 보람, 그리고 인생 2막에 대한 생각을 들어본다.
▣ 성주지역아동센터는 어떤 곳?
2008년 문을 연 성주군 1호 지역아동센터다. 처음 문을 열 당시 조손·한부모가정 아이들이 많아 토요일과 공휴일에도 무료급식을 제공하고 학습지도를 했다. 그동안 200명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했고 이중 사회복지사나 어린이집 교사로 성장한 사례를 보며 보람을 느낀다. 지난해 7월부터 공공성과 투명성을 높이고자 성주사회적협동조합 법인으로 전환해 운영하고 있다.
▣ 성주지역아동센터만의 특화프로그램이나 강점을 말해본다면?
정원 40명 중 절반 이상이 다문화가정이고 전체의 88%가량이 결손가정의 아동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꿈을 찾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방학마다 발표회, 연주회, 뮤지컬 관람 등 다양한 문화체험을 이어왔다. 어느 날 한 아이가 난타 공연을 본 뒤 배우고 싶어 한 것을 계기로 '1인 1악기'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바이올린, 플루트, 피아노, 우쿨렐레, 첼로 등 여러 악기를 접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아이들의 기량과 자신감이 자랐고 센터도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지금도 행정과 지역사회, 학부모들로부터 신뢰받는 기관이 되고자 책임감을 갖고 운영한다.
▣ 아동복지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아동복지교사로 근무하던 시절 취약계층 아동들의 힘겨운 삶을 보며 아동복지에 관심을 갖게 됐다. 남편을 따라 성주로 왔을 때 성주중앙초 일대에서 늦은 시간까지 보호자를 기다리며 방황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신경 쓰였다. 그 일을 계기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한 뒤 지역아동센터를 설립하게 됐다.
▣ 현장에서 바라본 지역 아동복지의 현실은 어떠하며, 앞으로 보완돼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지역아동센터가 법제화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민간이 운영하는 기관 정도로 여겨지며 공적 역할에 비해 지원과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 오랜 시간 현장을 지켜왔음에도 최근 생긴 여러 돌봄기관, 특히 국가에서 관리하는 다함께돌봄센터와 비교하면 시설비와 인력, 운영비 지원에서 큰 차이를 느낀다. 아이들을 돌보는 중요한 아동복지시설인 만큼 보다 제도적이고 안정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종사자 처우 개선과 함께 아동복지 현장이 차별없이 보호받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거나 보람을 느낀 순간은?
졸업한 아이들이 수능을 마치고 대학에 입학할 때나 군 입대를 앞두고 찾아와 인사할 때 늘 가슴이 뭉클해진다. "잘 자라줘서 고맙다"고 하면 "엄마 같은 원장님이 다 키워주셨잖아요"라고 답하는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보람을 느낀다.
▣ 올해 6월 퇴직을 앞둔 가운데 지난 19년을 돌아본 소회를 밝힌다면?
초창기에는 방과 후 돌봄과 지역아동센터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어 신고단계부터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권익을 지키고 센터의 필요성을 알리고자 지역사회와 함께 쉼 없이 달려왔다. 무엇보다 한부모가정과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조금씩 변화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보람을 느꼈다. 특히 다문화가정의 부모를 상대로 가족상담을 이어가면서 이주여성들이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익혀가는 과정을 함께한 점이 뜻깊었다.
▣ 퇴직 이후의 삶, 이른바 '인생 2막'은 어떻게 그려가고 싶은지?
성주지역아동센터가 사회적협동조합 법인으로 전환한 만큼 앞으로도 아동복지 증진을 위해 힘을 보태겠다.
▣ 가족과 지인 등 곁에서 힘이 돼준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초창기에는 인력이 부족해 방학이면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아들과 딸이 내려와 학습지도를 하고 이런저런 일을 거들어줬는데 돌이켜보면 미안한 마음이다. 또, 경제적인 뒷받침은 물론 여러 실무를 함께해준 남편에게 고맙다. 퇴직 후에는 그동안 충분히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을 조금씩 채우며 남편이 좋아하는 일도 같이하고 곁을 더 많이 지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