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사설 칼럼

규모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 하승수

이수영 기자 입력 2026.06.30 09:58 수정 2026.06.30 09:58

 

↑↑ 하 승 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변호사
ⓒ 성주신문

 

한국사회에는 규모에 대한 환상이 있다. 영리기업에도 신중하게 적용해야 할 만한 '규모의 경제'라는 얘기를 사회 온갖 분야에 마구잡이로 끼워 넣는 것이다. 그리고 규모화는 통합이나 합병으로 연결된다. 규모화를 하는 방법이 반드시 통합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단일 실체로의 통합이 '규모화를 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잘못된 생각에 빠져 있는 것이다. 각각의 실체를 유지하면서 협력하고 연대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런 접근법은 잘 보이지 않는다.

경제학에서도 '규모의 경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규모의 불경제' 또는 '규모의 비경제'도 있다. 기업의 규모를 키우려고 합병을 하기도 하지만, 그 결과가 늘 좋은 것도 아니다. 합병을 하면 자본금도 늘어나고 매출도 늘어나지만, 반드시 경쟁력이 좋아지고 비용절감이 되는 것도 아니다.

역사상 최악의 기업합병이라고 하는 아메리칸온라인(AOL)과 타임워너 간의 합병 사례를 봐도 그렇다. 2000년 당시 최고의 인터넷 기업이라고 하던 아메리칸온라인과 초대형 미디어 기업이었던 타임워너가 합병을 발표했다. 합병을 위한 거래 금액이 1,650만 달러에 달했는데,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거래였다.

그러나 두 회사 간의 합병은 기대했던 효과를 내지 못했다. 주가는 떨어졌고, 합병한 기업의 실적은 좋지 못했다.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다. 결국 이 합병은 2009년 아메리칸온라인이 다시 분리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합병 당시 1,600억 달러에 달했던 아메리칸온라인의 시가 총액은 수십분의 1로 추락했다. 합병이 실패한 이유는 조직문화가 다른데다, 생각보다 사업의 시너지 효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터넷 버블의 붕괴 등 외부적 환경도 좋지 않았다.

아메리칸온라인과 타임워너의 사례는 영리기업의 경우에도 단지 합병해서 규모를 키우는 것이 만병통치약이 아님을 보여준다. 하물며 공공부문이나 비영리 영역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시너지 효과보다는 마이너스 효과가 발생하기 쉽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공공부문이나 비영리 영역에서도 '규모에 대한 환상'이 강력하게 존재하고, 무분별한 통합과 합병이 판을 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간의 통합이 대표적이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남과 광주는 통합을 하기로 결정되었지만, 과연 이 통합이 얼마나 긍정적인 효과를 낼 지는 지켜봐야 한다. 갈등과 혼란만 키울 가능성도 높다. 2010년 이뤄졌던 창원-마산-진해 통합의 경우에는 사실상 통합은 실패했다. 통합 당시 108만명이던 인구는 100만명 이하로 줄어들었다. 게다가 통합을 둘러싼 지역 내부의 갈등도 심각했다. 시계를 더 거꾸로 돌려보면 1995년에 여러 지방자치단체 간에 합병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일체감을 느끼지 못하는 지역들도 있다.

농협이나 축협같은 조직도 합병을 많이 해 왔던 조직이다. 그러나 합병이 긍정적인 효과를 냈는지는 의문이다. 합병 후에 조합원들의 참여만 어려워지고, 지역밀착성만 떨어진 사례도 보게 된다.
규모가 커지면 부작용도 많다. 권력의 집중 현상도 심해질 수 있고, 구성원들의 참여는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오히려 작지만 강한(또는 건강한) 모델을 추구하는 것이 현실적일 수도 있다. 한국 사람들이 여행을 많이 가는 스위스 같은 국가에는 인구 2천명이 안 되는 기초지방자치단체(코뮌)도 수두룩하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시·군·자치구보다 더 많은 자치권을 누리면서, '삶의 질'을 높이고 있다.

독일의 에너지 전환 모델이라고 하는 '쇠나우'는 인구 4천명이 안 되는 작은 기초지방자치단체이다. 그런데 시민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재생가능 에너지로 발전을 시작했다. 그 결과 독일이라는 국가가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을 선도했다.

따라서 지금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작다는 것은 단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장점도 있다. 작기 때문에 구성원들의 의견 하나하나를 모아 나가기도 쉽고, 특성에 맞는 발전전략을 모색하기에도 좋을 수 있다.

조금 더 생각을 해 보면, 대한민국이 지역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이 모여서 대한민국이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각각의 색채를 가진 지역들이 모인 모자이크가 되어야 한다. 어느 하나의 색깔로 덮을 일이 아닌 것이다.

규모가 커지면 좋아진다는 것은 환상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규모가 아니라 다양성이고 자율성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삶에 대한 밀착성이다.



저작권자 성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