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 희 국 대구경북서협사무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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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환은 마을 사람들이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뿌듯했다.
무주선 지방도 공사가 활발히 진행되며 지역의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도로가 완공되면 지역 발전의 초석이 될 것이라 믿고 있었고, 덕환은 자신이 이 일을 진두지휘한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
그러나 그 자부심 뒤에는 가족을 향한 미안함이 늘 따라붙었다. 매일같이 지방도로 공사 현장을 오가며 바쁘게 살아가는 동안, 아내 본동댁이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느라 고생하고 있었다.
본동댁은 강단 있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5남매의 생계를 꾸리기 위해 소작농에만 의존할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소비조합운동에 뛰어들었다. 서울에서 생필품을 받아와 마을 주민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며, 인건비를 충당하고 남는 돈은 마을 부녀회 기금으로 쓰였다. 그녀의 헌신 덕분에 마을 협동조합운동은 점점 활기를 띠었고, 주민들은 본동댁을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
그런 가운데 덕환의 자녀 오남매는 어느덧 청소년기가 되어 상급학교 진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덕환은 아이들이 시골에서 머물러서는 미래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동안 일본과 국내 유지들을 만나며 배운 것은, 자녀들에게 교육만큼 중요한 투자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 새로운 터전
"누님, 죄송하지만 조카들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덕환은 대구에 사는 봉선 누님댁을 찾아가 고개를 깊이 숙였다.
봉선 누님은 잠시 망설였다. 자신도 사남매와 여섯 식구가 좁은 집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생의 간절함을 무시할 수 없었다.
"알았다. 남문시장 단칸방이라도 내줄 테니, 그 애들이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해보자."
그리하여 희태와 희천, 그리고 맏딸 옥자가 대구로 떠났다. 옥자는 가장으로서 동생들을 돌보고 살림을 책임졌다. 고등학생 희태와 중학생 희천은 학교에서도 모범적인 생활을 하며 고모님의 배려에 보답했다.
본동댁은 멀리 있는 자식들 걱정에 눈물이 날 때도 있었지만, 곧 이를 악물고 일에 몰두했다. 그녀는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한시도 흐트러질 수 없었다.
· 동료의 부재
그 무렵, 덕환의 정신적 지주였던 조재천 의원이 민주당 총재로서 총선참패의 책임을 지고 정계를 은퇴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어진 비보는 충격적이었다. 변호사로 활동하던 중 낙상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덕환은 멍하니 하늘만 바라봤다.
"이 일을 누구와 의논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포기란 그의 사전에 없었다. 덕환은 곧 초전면 출신 송한철 의원을 찾아갔다.
"송 의원님, 제가 추진 중인 지방도 공사에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지역 발전을 위해 송 의원님의 지원이 꼭 필요합니다."
덕환의 진심은 통했다. 송 의원은 공사 마무리를 위해 필요한 예산 지원을 약속했다. 박경원 도지사와 함께 그는 정부에 지속적으로 민원을 넣으며 무주선 완공을 위한 발판을 하나씩 마련해 나갔다.
· 길 위의 희망
길이 점차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보며, 덕환은 희망의 불씨를 다시 피웠다. 그 길 위에는 가족의 헌신, 마을 사람들의 협동, 그리고 덕환의 끈질긴 열정이 얽혀 있었다.
그 길이 완성되는 날, 덕환은 그 길 위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가족들과 함께 활짝 웃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삶은 어려웠지만, 꿈은 분명히 그 길 위에서 자라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