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석 종 출 성주향교 장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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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고 사태를 둘러싸고 우리 사회의 반응은 적지 않게 갈리고 있다. 어떤 이는 이를 역사 인식의 심각한 훼손으로 받아들이고, 또 어떤 이는 미숙한 학생들의 일탈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역사적 사건을 둘러싸고 해석과 평가가 다를 수는 있다. 그러나 이번 사안을 바라보는 사회의 일반적 인식은 비교적 분명해 보인다. 민주주의의 과정에서 큰 희생을 남긴 역사적 아픔을 가볍게 다루거나 조롱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필자 역시 이 지점에서 이번 일을 바라보게 된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단순히 부적절한 말이나 행동이 있었다는 데에 있지 않다. 그것이 우리 현대사의 비극적 장면과 연결되며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불편함과 상처를 주었다는 데 문제가 있다. 5·18 민주화운동은 세부적 평가와 정치적 해석을 떠나, 국가권력과 시민의 희생이라는 무거운 기억을 품고 있는 사건이다. 시대와 세대에 따라 이를 바라보는 관점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그 아픔의 무게까지 가볍게 여겨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역사적 상처는 때로 교과서의 몇 줄보다 훨씬 더 오래 공동체의 마음속에 남는다.
그렇다고 하여 이번 사안을 곧바로 감정적 응징의 대상으로만 삼는 것도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학생들의 잘못은 분명히 지적되어야 하지만, 그 잘못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는 차분해야 한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정확히 짚고, 왜 그런 언행이 공동체에 상처를 주는지를 이해시키는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단순한 질책만으로는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경험해 왔다.
여기서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학생들의 언행이 결코 진공 상태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늘의 청소년들은 학교 안에서만 배우지 않는다. 인터넷 공간, 영상 매체,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하여 훨씬 더 빠르고 자극적인 언어를 접한다. 특정 지역이나 역사적 사건을 희화화하고, 상대의 아픔을 조롱거리로 바꾸는 표현들이 아무렇지 않게 유통되기도 한다. 학생들이 그러한 표현을 따라 했다면, 그것은 학생 개인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어른 사회가 만들어 놓은 문화의 반영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웠는가를 묻지 않은 채 결과만 꾸짖는 것은 충분한 해답이 되기 어렵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학생 개인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고등학생이라면 자신의 말과 행동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또 그것이 누군가에게 어떤 상처가 될 수 있는지 알아야 할 나이다. 특히 학교의 이름을 달고 단체생활을 하는 운동부 학생들이라면, 경기장 안팎에서의 태도 역시 교육의 일부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학교 차원의 사실 확인과 적절한 조치, 그리고 분명한 사과는 필요하다. 공동체의 이름으로 일어난 일이라면 공동체 역시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징계의 수위만이 아닐 것이다. 교육의 목적은 잘못한 학생을 사회적으로 낙인찍는 데 있지 않고, 왜 그것이 잘못인지 깨닫게 하는 데 있어야 한다. 잘못을 지적하되, 그것이 단순한 처벌로 끝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역사교육과 시민교육,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는 감수성 교육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이번 사태는 한 차례의 소동으로 지나가고 말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학생들이 자신의 언행이 지닌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성찰할 수 있다면, 이번 일은 아프지만 필요한 교육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학교와 선생님의 책임 또한 가볍지 않다. 학생들이 이러한 언행을 하게 된 배경에 학교 문화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평소 역사와 인권에 관한 교육은 충분했는지, 현장에서 즉각적인 제지와 사후 조치는 적절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학생들의 잘못을 개인의 일탈로만 돌리고 학교는 한발 물러서 있는 모습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학생을 가르치고 이끄는 주체가 학교라면,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학교(선생님) 역시 함께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필자가 보기에 이번 배재고 사태는 어느 한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 사회 전체가 역사적 기억을 어떻게 전하고 있는지, 민주주의의 희생을 얼마나 살아 있는 교육으로 만들고 있는지, 그리고 경쟁과 흥분의 현장에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어디까지 지켜내고 있는지를 되묻게 하는 사건에 가깝다. 역사는 시험을 위한 지식으로만 남아 있을 때 힘을 잃는다. 그것이 오늘의 태도와 언어 속에서 살아 움직일 때 비로소 교육이 된다.
결국 이번 사안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은 두 가지를 함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나는 역사적 상처를 가볍게 여긴 언행의 잘못을 분명히 짚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그 잘못을 단순한 분노의 배출로 끝내지 않고 교육과 성찰의 계기로 돌려세우는 일이다. 아이들의 잘못을 꾸짖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꾸짖음이 어른 사회의 책임까지 덮어버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역사를 얼마나 사실로 가르쳤는가에 앞서, 어떠한 태도로 가르쳐 왔는가 하는 물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