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사설
독자마당
| ↑↑ 박 신 정 성주군다함께돌봄센터 2호점 센터장 |
| ⓒ 성주신문 |
1. 한 권의 책 앞에서 멈춰 서다
2018년 12월 8일.『서양사 속 빈곤과 빈민』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책을 다 읽었다는 성취감이 아니었다. 앞으로 내가 살아갈 방향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날 나는 책을 덮은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살아온 나 자신의 세계를 덮고 새로운 세계를 펼쳤다.
2. 연민은 출발점이지만 목적지는 아니었다.
사회복지를 시작할 때의 나는 '도와주고 싶은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고 믿었다. 가난한 사람을 보면 안쓰러웠고, 상처 입은 아이를 만나면 마음이 먼저 움직였다. 그러나 이 책은 내게 조용히 질문했다. 연민 만으로 사람은 살아갈 수 있는가. 역사는 말하고 있었다. 자선은 필요하지만, 자선 만으로는 빈곤을 끝낼 수 없다고. 빈곤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구조이며, 복지는 시혜가 아니라 권리라는 사실을. 그 순간 내 안의 사회복지는 '돕는 일'에서 '함께 살아가는 일'로 바뀌기 시작했다.
3. 책은 내 과거를 다시 읽게 했다.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책장을 넘길수록 서양의 빈민 역사가 아니라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가난했던 시간. 누구의 도움을 기다릴 수도 없었던 날들. 부모님의 삶을 외면할 수 없어서 먼저 철들어야 했던 아이. 그 아이는 오래전 내 안에서 울고 있었지만, 나는 애써 모른 척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아이를 다시 불러냈다. 그리고 물었다.
"너, 거기 있었는가?"
나는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요. 나 거기 있었어요."
4.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은 과거의 나였다.
사회복지사가 된 뒤 나는 보호종료아동과 무연고 아동들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가 그들을 돕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깨달았다. 아이들을 통해 과거의 나를 만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 아이들은 먹을 것이 부족해서만 힘든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자신을 믿어 줄 사람, 끝까지 기다려 줄 사람, 그리고 다시 일어설 이유가 필요했다. 브레진스키 신부가 말한 '제4세계'의 사람들처럼,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존엄을 회복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연민보다 연대를 선택하게 되었다.
5. 사회복지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일이다.
복지는 평생 붙잡아 주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걸어갈 수 있도록 손을 놓아 주는 일이다. 지원은 필요하다. 그러나 지원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람 안에 잠들어 있는 가능성을 깨워 주는 일, 그 가능성을 믿게 하는 일, 그리고 공동체가 끝까지 함께 걸어 주는 일. 그것이 내가 이해하게 된 '사회적 연대'였다.
6. 다시 묻는다.
2018년 겨울. 도서관에서 책 한 권을 읽던 나는 내 인생이 이렇게 바뀔 줄 몰랐다. 그 한 권의 책은 시를 쓰게 했고, 에세이를 쓰게 했고, 사회복지를 다시 배우게 했으며, 오늘도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게 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그 질문을 마음속에 품고 산다.
"너, 거기 있었는가?"
그리고 이제는 아이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건넨다.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 누군가는 반드시 네 곁에 있었다고.
그렇게 한 사람의 연민은 사회적 연대로 이어지고, 사회적 연대는 또 다른 사람의 삶을 일으켜 세운다.
"돌봄은 내일을 믿는 일"
돌봄은 거창한 일이 아니다. 아이들의 신발이 작아진 것을 알아채는 일, 말없이 눈가가 촉촉한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는 일, 하루를 무사히 마친 교실을 바라보며 안도하는 일. 그런 작은 마음들이 모여 한 사람의 삶을 지탱하고, 한 공동체를 따뜻하게 만든다.
나는 이제 사회복지를 연민의 대상에게 베푸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붙들어 주는 사회적 연대의 실천이라고 믿는다.
누군가의 손을 잠시 잡아 주는 일, 함께 걸음을 맞추는 일, 그리고 "괜찮다"고 말해 주는 일. 그것이 돌봄이고, 그것이 연대다.
오늘도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센터에는 고요함만 남았지만, 그 고요는 비어 있는 시간이 아니다.
아이들의 웃음과 선생님들의 수고, 그리고 서로를 향한 마음이 조용히 머물러 있는 시간이다.
그리고 내일이면, 이 고요한 공간은 다시 아이들의 웃음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 웃음이 나를, 그리고 우리를, 또 한 번 살아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