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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정 식 경북과학대 뮤직프로덕션과 교수 |
| ⓒ 성주신문 |
얼마 전 김진명의 소설 '세종의 나라'를 읽었다. 한글을 만들기까지 세종이 겪은 고뇌와 싸움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책을 덮고도 한동안 세종의 얼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이것저것 찾아보았다. 그러다 깜짝 놀랐다. 내가 근무하는 경북과학대학교에서 멀지 않은 성주 땅에, 바로 그 세종의 아들들이 묻혀 있었던 것이다. 정확히는 그들의 태(胎)가.
·아기의 첫 집, 태실
요즘은 아이가 태어나면 탯줄로 도장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엄마와 아기를 열 달 동안 이어 주던 줄이니 그냥 버리기 아깝다는 마음이다. 우리 어머니들 세대에는 아기의 태를 깨끗한 곳에 묻거나 태워서 정성껏 보냈다. 태는 생명이 처음 시작된 자리였다.
조선 왕실은 이 마음을 훨씬 크게 키웠다. 왕실에 아기가 태어나면 그 태를 항아리에 담아, 전국에서 가장 좋은 산을 골라 묻었다. 그 위에 돌로 작은 집을 짓고 비석을 세웠다. 이것을 태실(胎室)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아기의 첫 집이다. 양반가라 해도 태는 집 근처에 조용히 묻는 것이 고작이었다. 산 하나를 골라 돌집을 짓는 일은 오직 왕실만 할 수 있었다.
·두 줄로 선 형제들
성주군 월항면 선석산 자락, 태봉이라 불리는 작은 봉우리 위에 태실 열아홉 기가 모여 있다. 세종의 왕자 열여덟 명과, 맏손자인 훗날의 단종 것이다. 지금은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태실들은 두 줄로 나란히 서 있다. 앞줄은 왕비 소헌왕후가 낳은 대군들, 뒷줄은 후궁이 낳은 군들이다. 각 줄 안에서는 태어난 순서대로다. 아버지 세종은 이 두 줄을 보며, 아들들이 평생 이렇게 나란히 서로를 지켜 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시작하기 위해 태어난 아이들
20세기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사람이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작하기 위해 태어난다"고 했다. 한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세상에는 전에 없던 새로운 시작이 하나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 아이가 무엇을 말하고 어떤 일을 할지는 아무도 미리 알 수 없다. 아렌트는 이것을 '탄생성'이라 불렀다.
그렇게 보면 선석산의 태실은 열아홉 개의 시작이다. 아직 이름보다 울음이 먼저였던 아이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열아홉 개의 가능성이 거기 나란히 묻혔다. 그 시작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아이들이 자라 무엇을 택했느냐에 달려 있었다.
·칼 대신 말을 나눈 아버지
1443년, 세종은 스물여덟 자의 새 글자를 만들었다. '세종의 나라'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 무렵 세종의 집안에는 슬픈 일이 잇달았다. 2년 전 맏며느리가 손자 단종을 낳고 며칠 만에 세상을 떠났고, 1444년 겨울에는 다섯째 아들 광평대군이 스무 살 나이로 숨졌다. 이듬해 봄에는 일곱째 평원대군이 뒤를 따랐다. 그리고 훈민정음을 세상에 알린 1446년, 평생의 반려 소헌왕후마저 떠났다. 소설 속 세종의 고군분투를 읽는 내내 그 뒷모습이 겹쳐 보였다. 눈병과 지병으로 몸도 성치 않던 왕은, 자식과 아내를 차례로 땅에 묻으며 새 글자를 다듬었다.
세종은 그 글자를 만든 까닭을 이렇게 적었다.
"우리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로는 서로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리석은 백성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끝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딱하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그 시절 글은 양반의 것이었다. 한자를 아는 사람만이 법을 읽고, 억울함을 글로 호소하고, 나라의 일에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세종은 그 문을 백성에게 열려 했다. 최만리를 비롯한 신하들이 거세게 반대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왕이 스스로 기득권의 문을 연 셈이니까.
'세종의 나라'에서 가장 오래 남은 장면도 여기에 있다. 소설 속 여덟 대신은 새 글자를 세상을 어지럽히는 글자라 부르며, 명 황제에게 제 임금을 왕위에서 끌어내려 달라는 글을 올린다. 왕으로서 그보다 큰 반역은 없다. 황제가 그 청을 물리치고 대신들의 명단을 조선으로 돌려보내자, 이제 그들의 목숨은 세종의 손에 달렸다. 그런데 세종은 그들을 벌하지 않는다. 대신 붓을 들고, 쉰 목으로 새 글자의 이치를 하나하나 풀어 가르친다. 두려움에 떨던 신하들은 어느새 그 공부를 따라간다.
소설 속 세종은 백성이 글을 얻어야 조선이 비로소 "스스로 생각하는 나라, 스스로 말하는 나라, 스스로 걸어가는 나라"가 된다고 말한다. 끝까지 반대하며 백성의 헛소리가 온 나라를 채울 것이라 버티는 대신에게는 이렇게 답한다. 몇몇을 빼고는 모두가 침묵하고 감내해야 한다면, 그것은 "그 몇몇만이 사는 작은 나라일 뿐"이라고. 작가의 상상이 보태진 장면이겠지만, 나는 이 장면이 세종의 참모습을 정확히 짚었다고 느꼈다. 자식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그는 칼이 아니라 말로 이기는 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