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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 희 국 대구경북서협사무국장 |
| ⓒ 성주신문 |
대구-무주간 지방도 개설 소식은 모두에게 희망을 불러일으켰다. 주민들은 오랜 기다림 끝에 고향이 발전할 날을 꿈꾸었다. 하지만 해가 바뀌고도 정부에서 아무런 움직임이 없자, 실망은 점차 분노로 변해갔다.
그 중심에는 덕환이 있었다. 그는 매일같이 주민들의 질문과 호소를 듣는 자리에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덕환은 직접 청원을 작성해 정부에 지방도 개수공사의 착공을 촉구했다. 나아가, 민주당 부총재 조재천 의원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관계 기관에 영향력을 행사해 줄 것을 간청했다. 조 의원은 야당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덕환의 요청을 수락하며 신뢰를 보였다.
· 첫 삽을 뜨다
이듬해, 정부는 경북도를 통해 후리실 마을 인근 난공사 구간 공사에 예산 일부를 지원했다. 덕환은 곧바로 움직였다. 특수 리어카 두 대를 제작하기 위해 대구 철공소에 의뢰했고, 곡괭이, 삽, 시멘트 작업 도구까지 공사에 필요한 장비를 확보했다. 장남 희태와 그의 친구 형철이를 시켜 리어카를 끌고 오게 하고는, 주민들을 모아 다리 건설에 착수했다.
토끼재 냇가 다리 공사가 첫 번째였다. 철근으로 기둥을 세우고, 목수 병태 형의 주도로 비계를 설치한 후 시멘트와 모래를 채워 형태를 만들어갔다. 처음 해보는 공사라 인부들은 애를 먹었지만, 한 달간의 양생 과정을 거쳐 드디어 다리의 웅장한 모습이 드러났다. 네모기둥과 철근 난간을 세우니 마침내 첫 번째 다리가 완성되었다.
이후로도 은내마을 두 곳의 다리를 추가로 건설했다. 하지만 자재는 곧 바닥났고, 희태가 꼼꼼히 기록한 출근 장부는 인부들의 도장이 빼곡히 찍혔다.
· 밀가루로 대가를 치르다
경상북도청에 인건비 지원을 요청했지만, 예산 부족으로 돌아온 것은 미국 원조물자인 밀가루였다.
인부들에게 임금 대신 밀가루 한 포대씩을 나눠주자 주민들은 처음에는 기뻐했다. 국수, 수제비, 술빵 등 음식을 풍족하게 먹을 수 있어서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불만이 터졌다. 집집마다 쌓인 밀가루에 질린 주민들이 투덜대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덕환은 시장 상인들에게 밀가루를 팔아 인건비를 마련하기로 결심했다. 주민들의 임금을 지급하자 분위기는 잠시 안정되었지만, 곧 문제가 터졌다. 원조물자는 매매가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 억울한 처벌
금수파출소는 덕환에게 출두를 명령했다. 덕환은 마을의 사정을 설명하며 선처를 요청했지만, 법은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 29일간 구류 처분을 받고 유치장에 갇힌 덕환은 억울함을 삼켜야 했다. 매일같이 10리 길을 오르내리며 남편을 돌보는 본동댁의 애틋한 정성이 그나마 위로였다.
출소날, 덕환은 본동댁과 동생 창환의 마중으로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마을 주민들은 그를 위로하며 "마을을 위해 너무 고생이 많았다"고 안타까워했다.
· 완공을 향한 길
이듬해, 추가 예산이 투입되며 샛덤과 평촌마을 다리 두 곳과 바위산 절벽 공사가 이어졌다. 폭약으로 암벽을 깎는 과정에서 돌덩이가 마을 지붕까지 날아들기도 했지만, 공사는 멈추지 않았다. 오독실 저수지 공사까지 시작되자 덕환의 가족은 온 힘을 다해 도왔다. 희태는 학교를 마치면 콘크리트 타설 배수로 관에 물을 퍼날라 부었고, 본동댁은 인부들의 식사를 챙겼다. 막내 국이는 술주전자를 나르며 꼬맹이 손을 보탰다.
모든 것이 완성되었을 때, 덕환은 한숨을 돌렸다. 그의 희생과 노력으로 마을은 새롭게 변모했고, 주민들의 삶은 한결 나아졌다. 하지만 그의 억울했던 구류 처분은 오점으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