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 희 국 대구경북서협사무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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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선 지방도를 국도로 승격해달라는 청원을 올린 지 어느덧 3년. 그러나 중앙정부의 태도는 요지부동이었다. 덕환은 청원에 대한 답변서를 열어보았다.
"본 건은 현재 검토 중이오니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그 한 줄이 전부였다. 서류 속 글자는 분명 정중했지만, 덕환에게는 차가운 벽처럼 느껴졌다.
덕환은 책상 위에 쌓인 청원 서류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가슴 한편에선 *'내가 무리한 꿈을 꾸고 있는 건가?'*라는 의구심이 피어올랐다. 그러나 바로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 새로운 도전
가족들의 희생이 덕환의 마음을 짓눌렀다. 큰아들 희태와 맏딸 옥자는 학업을 미루고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고, 희천이도 형제들을 따라 분주히 움직였다. 어느 날, 손윗동서 이서방 형님이 덕환에게 말했다.
"조서방, 나랑 신발 장사 한번 해보지 않을텐가? 원고개시장에 자리가 하나 나왔다네"
덕환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장사가 잘된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가족의 생계를 위해 더는 마냥 기다릴 수 없었다.
원고개시장에 새로 연 신발 가게는 소박했지만 나름대로 알차게 꾸며졌다. 고무신, 구두, 운동화가 가지런히 진열된 가게에서 덕환은 도·소매가게 손님을 맞았다.
밥벌이는 될 정도로 장사가 이어졌다. 덕환은 속으로 아내 본동댁을 생각하며 늘 미안함을 느꼈다.
"당신에게 고생만 시키는구먼."
· 신현확 장관과의 만남
성주를 중심으로 한 동서남북으로 연결되는 국도승격 청원이 지지부진해 지자 덕환은 상경길에 올랐다. 총리실, 건설부 장관실, 그리고 신현확 보사부 장관실까지 쉴 틈 없이 뛰어다녔다. 신 장관은 덕환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조 선생님, 이렇게 먼 길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제가 큰 도움을 드리지 못해 늘 송구합니다."
덕환은 웃으며 말했다.
"신 장관님, 마음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저희 성주를 위해 늘 애써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지요."
신 장관은 잠시 망설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 요즈음 보사부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의료보험 제도를 도입하려는 계획인데, 이 과정에서 별도의 공단이 신설될 예정입니다. 선생님의 아드님이 이곳에 지원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덕환은 당황했다. "장관님, 저희 희태는 이미 직장을 잘 다니고 있습니다.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하지만 신 장관은 단호했다.
"조 선생님, 성주를 위해 헌신하시는 선생님께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보답입니다. 아직은 신설 회사라 안정적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장래성은 보장할 수 있습니다. 꼭 생각해보세요."
· 희태의 결단
대구로 돌아온 덕환은 희태를 불러 신 장관의 제안을 전했다. 희태는 처음엔 난감해했다.
"아버지, 지금 다니는 회사에도 잘 적응하고 있고, 굳이 옮길 필요가 있을까요?"
덕환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희태야, 신 장관님 말씀이 일리가 있다. 네가 그 공단의 창립 멤버가 된다면 장래에 큰 기회가 될 수 있을 거야."
희태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아버지의 설득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버지를 믿고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는 서둘러 이력서를 작성해 우편으로 접수했다. 몇 주 뒤, 희태는 서류 심사를 통과하고 면접까지 합격했다. 마침내, 의료보험공단의 창립 멤버로서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 덕환의 안도
덕환은 희태가 새로운 직장에 자리 잡았다는 소식을 듣고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의 눈앞에는 낙동강 위로 뻗은 다리와 성주를 가로지르는 도로들이 어른거렸다.
"이제야 조금은 가족에게 보답한 것 같구나."
그는 마음속의 무거운 짐을 조금 덜어낸 듯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곧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이 도로를 국도로 승격시키는 그날까지,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덕환의 결의는 여전히 단단했고, 그의 발걸음은 다시 힘차게 성주 땅을 밟기 시작했다.